지난 6월 24일 미국프로야구(MLB) 워싱턴 내셔널스 짐 리글먼(58) 감독은 워싱턴 홈구장에서 열린 시애틀 매리너스와 인터리그에서 1-0으로 승리를 거둔 뒤 감독직을 내려놓겠다고 뜻을 전했다.
이유는 구단이 올 시즌으로 끝나는 자신의 감독 임기 연장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시 이 문제를 놓고 미국 언론들은 "시즌 중에 감독이 갑작스럽게 팀을 떠난다고 선언한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 보도했다.
그로부터 두 달 정도가 지나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17일 오후 5시를 조금 넘겨 김성근(69) SK 와이번스 감독이 "올 시즌 후 그만두겠다"고 폭탄 선언을 했다. 지난 2007년 SK를 맡은 뒤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3번의 우승과 한 번의 준우승을 일궈낸 감독의 돌연 사임 선언은 예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유는 같았다. 김 감독은 올 시즌을 끝으로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가운데 SK 구단이 차일피일 재계약 날짜를 미루며 "시즌 종료 후 이야기하자"고 말하자 자진 사퇴의사를 표명했다.
사실 감독이 자신의 입으로 사퇴를 선언한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나 흔치 않은 일이 한 시즌 동안에 한국과 미국에서 같은 사유로 일어난 것이다.
▲리글먼 감독, 승리 직후 자진 사퇴하고 떠났다
먼저 리글먼 감독은 지난 2009년 7월 매니 액타 현 클리블랜드 감독이 물러난 뒤 워싱턴 지휘봉을 잡았다. 리글먼 감독은 2009시즌을 마치고 워싱턴과 2011시즌까지 계약을 했고, 2012년은 구단이 결정한다는 옵션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올스타 브레이크가 다가오는 시점이지만 워싱턴 구단이 아무런 말이 없자 불만을 터뜨리고 말았다.
당시 미국 스포츠전문매체인 '스포츠일러스트레이트(SI)'에 따르면 리글먼 감독은 불과 몇 시간 만에 사임 여부가 결정됐다. 그는 이날 경기 전 마이크 리조 단장을 만난 자리에서 "만약 경기 후 연장 발표를 하지 않을 경우 나는 버스에 타지 않을 것"이라고 선전포고했다. 그의 갑작스런 제안에 당황한 리조 단장은 경기 후 리글먼 감독실에 들러 계약 연장을 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리글먼 감독은 사임을 결정했다.
리글먼 감독은 사임 기자회견에서 "나는 58세다. 나는 무시를 당하기에는 나이가 많다"며 자신의 사임에 부당함을 호소했다. 그는 또 "내가 다음에 또 다시 감독직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1년 계약은 다시 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노를 삭혔다.
리글먼 감독은 감독 경력 12년 동안 통산 662승 824패를 기록했다. 정확히 162패를 더 한 것이다. 약체를 맡았다고 할 지라도 승률이 저조한 것은 사실이다.
▲김성근 감독, 경기 전 자진 사퇴 선언하다
2007년부터 SK 지휘봉을 잡은 김성근 감독은 그 해 SK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며 감독으로서도 최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 동안 삼성을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약체를 지도하면서도 상위권 전력으로 이끌었으나 우승은 거머쥐지 못했던 2인자가 1인자로 올라선 순간이었다.
이후 김 감독은 2008년과 2010년 한국시리즈 왕좌에 오르면서 SK를 절대 강호로 이끌었다. 2009년 KIA와 최종 7차전까지 가는 끝에 3승 4패로 무릎을 꿇으며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그쳤으나 당시 주전 선수들의 줄부상 및 시즌 아웃으로 선수단 운용조차 힘들었던 환경에서 대단한 성과를 거뒀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김 감독의 재계약과 관련해 6월경 언론을 통해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후 김성근 감독과 SK 구단의 만남이 있었으나 재계약 합의를 놓고 계속해서 시점이 미뤄지자 김성근 감독은 시즌 종료 후 자진 사퇴를 선언했다.
김성근 감독 역시 리글먼 감독과 달리 직설적인 표현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즌 중 갑작스런 사임 발표는 구단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며 "SK와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못까지 박아 그 의미는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김성근 감독은 지난 1984년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를 시작으로 태평양 돌핀스, 삼성 라이온즈, 쌍방울 레이더스, LG 트윈스, 그리고 SK 와이번스까지 올 시즌 포함 총 20시즌 동안 6개 팀에서 감독을 맡아 1234승 1036패 57무를 기록했다. 약팀을 강팀으로 만들었다는 데 그의 능력은 높게 평가를 받는다.
▲김성근-리글먼 사퇴 이유는?
김성근 감독과 리글먼 감독은 무엇보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팀에서 자신에 대한 믿음보다 계속해서 평가와 잣대를 들이대는 모습에 기분이 몹시 상했다. 그래서 시즌 중반에 폭탄 선언을 했다.
또 다른 이유로는 다른 길을 준비한다고 볼 수 있다. 김성근 감독은 나이가 많기는 하지만 어느 구단이든지 그를 매력적으로 생각한다. 구단과 마찰은 조금 있다 할 지라도 성적만큼은 확실히 낼 수 있다는 경력이 있다.
리글먼 감독 역시 올 시즌 워싱턴 성적이 가장 좋을 때 폭탄 선언을 했다. 팀이 최근 11승1패로 가장 잘 나가던 순간 옷을 벗었다. 언론으로부터 가장 주목과 관심을 받는 순간을 마지막 시점으로 뽑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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