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철의 behind] 일부 팬들의 '분노 표출'과 그라운드 '생채기'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1.08.19 07: 01

18일 인천 문학구장. SK 와이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가 2-0 삼성의 승리로 끝난 후 SK 팬 무리는 한데 모여 오물 투척 후 그라운드까지 밟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운드 주변으로 모여 유니폼 화형식을 펼쳤습니다.
 
같은 날 SK는 '재계약 자진 포기'를 선언한 김성근 감독의 경질을 결정하고 말았습니다. "올 시즌 후 지휘봉을 놓겠다"라는 김 감독의 이야기가 있었으나 "선수단의 동요를 우려해 좀 더 안정화된 전략을 펼치고자 퇴진을 결정했다"라는 구단 측의 의견과 함께 김 감독의 지휘봉은 이만수 감독대행에게로 넘어갔네요.

 
팬들의 분노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짠물 야구'라는 수식어로 대표되었으나 삼미-청보-태평양으로 이어진 약체팀의 연고였던 인천. 1998년 현대의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인천 팬들의 간절했던 염원이 이뤄졌으나 2년 후 현대의 연고이전으로 좌절했던 이들에게 김 감독은 고마운 존재였으니까요.
 
김 감독은 지난 4년 간 매번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서 3번의 우승과 1번의 준우승에 성공하며 SK를 절대 강호 반열까지 올려 놓았습니다. 팬들의 갈망을 풀어 준 지도자였던 만큼 갑작스러운 사퇴에 당황하고 분노하셨을 마음. 이해합니다. 그러나 18일 '불타는 그라운드'는 정도가 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관중들이 그라운드를 밟기 전 굉장히 많은 병들이 허공을 갈랐습니다. 김 감독을 경질하지도 않은 애꿎은 진행요원들이 맞을 뻔 했고 앞자리에 앉아있던 관중들까지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 있던 아찔한 순간이었네요.
 
 
 
불길이 치솟던 순간 3루 덕아웃 쪽에서는 상자에 담겨있던 야구공이 가득 그라운드에 펼쳐졌습니다. 군중들은 이를 잡기 위해 부산하게 몰려들었고 불펜 투수를 위한 카트가 일부 팬들의 놀이도구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동안 어지럽혀졌던 그라운드는 꽤 긴 시간이 지나고서야 조용해졌습니다. 물론 그 어지러운 잔해들은 그대로 남겨진 채 말이지요.
 
팬들의 격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기는 야구를 추구하며 SK를 강호 반열로 올려 놓은 김 감독의 야구에 울고 웃고 즐기던 팬들의 허탈감과 상실감, 충격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훼손한 그라운드는 팬 분들이 응원하고 사랑을 주는 선수들의 공간이었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은 부산 원정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만약 그들이 그 광경을 지켜봤다면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가뜩이나 갑작스러운 감독의 사퇴로 마음이 무거운 이들의 장에 불을 지르고 어지럽혔다는 것. 여러분은 김 감독만을 사랑하셨던 것인가요.
 
 
 
그들은 여러분이 불태운 문학 그라운드에서 김 감독의 지도에 따라 열심히 치고 달리고 던졌던. 팬 분들이 'SK 팬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하고 크고 작은 부상에도 꾹 참고 경기에 나섰던 선수들입니다. 그라운드는 그들의 무대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사이 그 무대는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또한 격분한 팬분들로 인해 위험천만한 순간이 벌어질 뻔 했습니다. 만약 관중석 뒤쪽에서 강하게 날아든 병에 앞좌석 관중이 맞아 부상당했더라면 던진 당사자의 기분이 풀리겠습니까. 앞좌석 관중이 김 감독의 사퇴를 결정했던가요.
 
팬들이 원하는 바를 현실로 이끈 감독의 갑작스러운 낙마에 분노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지나친 격분은 다이아몬드를 어지럽히는 행동으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김 감독과의 갑작스러운 이별에 굉장히 슬프고 화나시겠지만 지금 이 시간도 여러분이 불태운 푸른 잔디를 밟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꿈을 키우는 이들이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음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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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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