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시즌 12승을 올리며 화려하게 데뷔, 생애 한 번 뿐인 신인왕 타이틀을 획득했던 재기넘치던 우완. 그러나 부상과 구위 하락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며 제 명성을 찾지 못했던 베테랑 우완 김수경(32. 넥센 히어로즈)이 오랜만에 기지개를 켰다.
김수경은 지난 19일 목동 KIA전서 갑작스럽게 선발로 등판해 5이닝 동안 3피안타(사사구 3개, 탈삼진 1개) 1실점으로 호투했다. 원래 선발로 내정되어있던 김성태(29)가 경기 개시 직전 연습 투구를 하다가 어깨 통증으로 인해 KIA측의 양해를 구하며 교체되어 제대로 몸을 풀지 못하고도 쾌투를 펼치며 의외의 활약을 펼쳤다.

비록 팀이 6회 2-4 역전을 허용하며 5-4 끝내기 승리의 수혜자가 되지 못했으나 그의 5이닝 1실점투는 분명 의미가 컸다. 올 시즌 김수경의 성적은 10경기 평균자책점 2.73.(20일 현재)
1998년 인천고를 졸업하고 넥센 선수단의 전신 격인 현대에 1차 지명 입단한 김수경은 그 해 12승을 거두며 통합 우승에 한 몫했다. 2000년에는 18승을 올리며 공동 다승왕이 되기도 한 김수경은 묵직한 직구와 날카롭게 떨어지는 슬라이더로 타자들을 제압했다.
그러나 2005시즌서부터 그는 점차 주춤하며 제 위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무릎 부상 및 수술, 허리 부상 등이 겹치며 제 힘을 서서히 잃었던 것. 2007시즌 12승을 올리며 재기에 성공했으나 또다시 주춤하기를 반복했다. 지난 시즌에는 1경기 1패 평균자책점 13.50에 그치고 말았다.
올 시즌 초에도 별다른 상승세를 보여주며 김시진 감독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김수경. 그가 예상치 못했던 악재 속에서 깜짝 호투를 보여주며 경기를 만들어냈다. 만약 김수경이 제대로 몸을 풀지 못한 여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졌더라면 5-4 끝내기 승리도 장담할 수 없었다.
경기 후 김 감독은 김성태의 어깨 대원근 부상에 대해 "이틀 전 불펜에서는 정말 공이 좋았는데"라는 말로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러나 김성태의 갑작스러운 공백에도 김 감독은 울상만을 짓지 않았다. 제대로 몸도 풀지 못하고 올랐던 김수경이 우연한 기회를 제대로 살리며 위안거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김)성태의 부상으로 갑자기 올라와 준비도 제대로 못했던 (김)수경이다. 그런데 그렇게 잘 던져줘 다행이다. 수경이가 앞으로 더 좋아질 수 있는 계기를 스스로 만들었다고 본다",
한 야구인 또한 "김수경이 빠른 공은 잃었으나 주무기인 슬라이더 외에도 투심, 포크볼, 커브 등을 다양하게 던지며 타자들의 타이밍을 흐트러뜨렸다"라며 노련미를 보여줬다는 점을 높이 샀다. 이날 김수경의 직구 최고 구속은 138km에 그쳤다. 그러나 그는 '투수는 빠른 공만이 능사가 아니다'라는 것을 증명했다.
우연한 기회가 '역시나'가 되었다면 넥센은 주축 선발투수 중 한 명인 김성태의 부상에 더욱 뼈아픈 고통을 감내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베테랑 김수경은 갑자기 찾아 온 기회를 제대로 살려 마운드에서 '세렌디피티(serendipity-우연한 발견)'를 보여주었다.
farinell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