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슬라이더는 왜 치기 어려울까.
한화 필승계투 박정진(35)은 자주 그리고 길게 던지는 투수다. 올해 5승4패5세이브10홀드 평균자책점 3.25를 기록 중이다. 특히 48경기에서 63⅔이닝을 소화했다. 2이닝 투구가 13경기였으며 그 중 5경기는 3이닝 이상 투구였다. 그런데도 박정진은 쉽게 공략당하지 않는다. 좌완으로서 140km 중반대를 던질수 있는 묵직한 직구와 함께 위력적인 슬라이더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두산의 타격기계 김현수는 가장 치기 어려운 슬라이더로 주저없이 박정진의 것을 꼽는다.
박정진의 슬라이더는 왜 치기 어려운 것일까. 한화 정민철 투수코치는 '앵글'이라는 말로 운을 뗐다. 정 코치가 말한 앵글이란 박정진이 공을 놓는 위치를 뜻한다. 박정진은 볼을 놓는 순간 타점이 높다. 리그에서 타점이 가장 높은 투수로 꼽힌다. 워낙 높은 각도에서 떨어지는 슬라이더이다 보니 각도가 크고 상대 타자들이 쉽게 현혹된다. 정 코치는 "앵글이 보통 투수들과는 다르다. 각도 크고 공을 최대한 뒤에서 감춰 놓기 때문에 타자들이 타이밍을 맞추기 훨씬 어렵다"고 설명했다.

박정진은 "슬라이더로는 세 가지 종류를 던진다. 스트라이크 카운트를 잡는 슬라이더와 떨어지는 슬라이더 그리고 느린 슬라이더를 던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공을 잡는 그립에 비밀이 있는 것일까. 그는 "다른 선수들과 같은 그립을 잡고 있다. 그런데 TV 중계를 보니 다른 투수들은 공을 놓는 순간 손가락이 던지는 방향으로 꺾이는데 나는 그 반대로 향하더라. 나도 몰랐던 부분이다. 그게 아마 차이점이 아닐까 싶다"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박정진의 슬라이더는 횡으로 휘는 게 아니라 종으로 떨어지는데 낙폭이 크다.
또 다른 특화된 부분은 역시 투구폼이다. 박정진의 투구폼은 타점이 높고 와일드하다. 프로에 입단한 뒤 어깨 통증을 느꼈고, 통증을 느끼지 않기 위해 던지다 보니 지금의 역동적인 투구폼이 완성됐다. 정 코치는 "다른 투수들이 함부로 흉내낼 수 없는 박정진만의 투구폼"이라고 했다. 박정진은 "대학때는 지금 폼이 아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힘들어 보이지만, 지금 폼이 나에게는 가장 편한 것"이라고 말했다. 키킹시 공을 뒤로 감추고, 릴리스 포인트가 아주 높기 때문에 박정진의 슬라이더는 난공불락이 될 수밖에 없다.
박정진은 "내 슬라이더가 윤석민이나 김광현보다 절대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나마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희소성 때문에 타자들이 쉽게 치지 못하지 않나 싶다"며 자세를 낮췄다. 하지만 정민철 코치는 "정진이의 폼과 슬라이더는 좌우 코너워크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다. 좌우가 아니라 상하에 포커스를 맞췄기 때문에 조금 더 유리하다. 지금처럼 자기관리 잘하고, 슬라이더 위력만 유지되면 앞으로 꾸준히 롱런할 수 있는 투수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박정진은 만족을 모른다. 그는 "작년과 비교하면 올해 슬라이더가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자가진단했다. 지난 겨울에는 한참 어린 후배 류현진에게 직접 그립을 물어보며 체인지업 장착을 위한 노력도 마다하지 않았다. 박정진의 어깨와 열정은 그의 얼굴만큼 젊고 생생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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