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고유라 인턴기자] "하아, 쟤 때문에 1년 내내 딜레마야".
최근 목동 홈경기에서 선수들의 경기 전 훈련모습을 바라보던 김시진(53) 넥센 히어로즈 감독은 배팅 훈련을 하던 한 선수를 바라보며 짙은 한숨을 쉬었다.
그 선수는 바로 넥센의 외야수 고종욱(22). 2011 신인드래프트에 나온 선수 중 '발이 가장 빠른 선수'라는 평을 들으며 넥센에 3라운드 전체 19번으로 지명된 신인이다.

고종욱은 홈에서 1루까지 단 3.67초에 주파할 정도로 빠른 발을 지녔다. 김 감독은 바로 그 점을 안타까워했다. 김 감독은 "올해 고종욱에게 시즌초부터 계속해서 기회를 줬는데 타격이 안되니 나가서 뛰질 못한다"며 "1년 내내 고종욱 때문에 딜레마에 빠진다"고 답답해했다.
김 감독이 딜레마에 빠지는 이유는 바로 고종욱의 1군 경기와 2군 경기의 성적 차이. 고종욱은 올 시즌(24일 현재) 1군에서는 31경기에 나와 60타수 12안타 5타점 타율 2할만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2군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고종욱의 올 시즌 2군 성적은 50경기 198타수 70안타(5홈런) 39타점. 타율은 3할5푼4리, 장타율은 무려 5할3푼에 이른다.
김 감독은 "고종욱이 2군에만 가면 펄펄 난다. 치기만 하면 그냥 안타도 2루타가 된다. 발이 LG 이대형보다 더 빠르다. 그런데 1군에만 오면 방망이가 맞질 않는다"면서 "아직 심적인 면에서 약한 것 같다"고 평했다.
그런데 8월 들어 고종욱이 1군에서도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고종욱은 21일 KIA와의 3연전 마지막날에 8회 알드리지의 대타로 1사 1,2루의 상황에 타석에 들어섰다. 투수 폭투로 2,3루가 된 뒤 고종욱은 좌중간에 떨어지는 안타를 쳤다. 그 사이 주자들은 모두 홈을 밟았고 고종욱은 어느새 3루에 안착해 있었다. 순전히 빠른 발로 3루에 슬라이딩 없이 세이프되며 고종욱은 지난 4월 5일 두산전 이후 25경기 만에 1군에서 타점을 올렸다.
고종욱은 이 기세를 이어 23일 잠실 LG전에서는 7회 대주자로 나와 도루에 이어 득점에 성공하며 5-5 동점을 만들었다. 24일에는 6월 14일 잠실 두산전 이후 처음으로 2번타자 좌익수로 선발 출장했다.
이날 고종욱은 LG의 에이스 박현준을 상대해 1회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로 2루까지 출루한 뒤 2회에는 우중간 담장 앞에 떨어지는 큼지막한 안타로 1,2루 주자를 모두 홈으로 불러들이고 3루까지 뛰었다. 올 시즌 5타점 중 4타점을 일주일 안에 만들어내며 기회의 사나이임을 입증한 것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많았다. 고종욱은 이날 1회에는 2루에서 견제사에 걸려 아웃됐고, 2회에는 3루에서 다음 타자의 땅볼 때 홈으로 들어오다 런다운에 걸려 아웃됐다. 아직 주루 플레이에 미숙한 모습이다.
이날 경기 후 고종욱은 "최근 대타로 나올 때부터 타격감이 좋았고 컨디션이 좋아 잘 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던 것 같다"고 말하며 "오늘은 자신감이 무기가 됐다. 남은 경기 동안 한 단계 한 단계 배워가면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1군 무대에 잘 적응한다면 고종욱은 앞으로 민첩한 외야수 겸 테이블 세터로서 제몫을 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 파릇파릇한 대졸 신인인 고종욱이 과연 타고난 빠른 발에 타격 감각, 주루 플레이까지 잘 익혀 김 감독에게 딜레마 대신 승리를 안겨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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