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신의 항의가 만든 승리였다.
지난 24일 청주 한화-삼성전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 벌어졌다. 3-3으로 팽팽히 맞선 8회말 1사 만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한화 이희근(26)에게 삼성 안지만의 2구째 145km 직구가 몸쪽으로 들어갔다. 이희근의 배트가 나오다 멈췄고, 그 순간 공이 살짝 굴절됐다. 주심 김정국 심판원의 판정은 파울. 배트 끝에 공이 맞아 굴절됐다는 판정이었다. 그러자 이희근이 펄쩍 뛰었고, 김민재 3루 베이스코치가 홈으로 뛰어왔다. 몸에 맞았다는 의미의 항의였다.
이희근은 "손등에 맞았다"고 주장하며 배트 장갑을 벗고 오른 손등을 김정국 심판원에게 보여줬다. 한대화 감독도 그라운드로 나와 항의에 합세했다. 그러나 보통 현장에서 한 번 내려진 판정은 잘 반복되지 않는다. 홈런처럼 비디오 판독을 요청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희근의 반응이 거셌고 4심이 모였다. 그 순간에도 이희근은 벌겋게 달아오른 오른 손등을 내밀며 '명백한 사구'를 주장했다.

그러자 심판진도 파울에서 사구로 판정을 번복했다. 이희근의 벌겋게 달아 오른 손등과 집념의 항의가 판정 번복을 이끌어냈다. 삼성 류중일 감독과 코칭스태프도 판정 번복에 대해 항의하러 나왔지만 이희근의 명백한 증거가 된 손등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한화는 이희근의 밀어내기 사구로 4-3 역전에 성공한 뒤 김회성의 희생플라이로 추가점을 올리며 최강 불펜 삼성을 상대로 역전극을 펼쳤다.
경기 후 이희근은 "진짜로 맞은 것"이라며 벌겋게 부은 손등을 보였다. 그는 "몸에 맞았기 때문에 항의는 당연했다"며 "사실 타석에 들어설 때부터 몸에 맞고서라도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안지만이 몸쪽 승부를 많이 하지 않는 투수라 진짜로 몸에 맞을 줄을 몰랐다. 운이 참 좋았다"며 웃어보였다. 이희근은 지난 2008년 6월6일 대전 히어로즈전에서도 끝내기 몸에 맞는 볼로 승리의 주역이 된 바 있다.
이에 앞서 지난 23일 이희근은 특별한 체험을 했다. 이날 오후 1시 광주에서 KIA 2군과 경기에 선발출장, 9회까지 모든 이닝을 소화한 그는 9회말 "1군에 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1군에 있던 포수 박노민이 타격 훈련 중 꼬리뼈를 다친 바람에 긴급 호출을 받은 것이다. 그는 광주에서 대전으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택시비만 약 12만원. 대전으로 온 뒤 박노민을 태우고 온 구단차량을 타고 청주로 이동했다. 2회가 되어 1군 선수단에 합류했다. 그는 "2군 경기를 위해 오전 일찍 일어났다. 그러면 안 되지만 경기 중 졸음이 오더라"며 웃어보였다
이희근은 "택시비가 12만원 정도 나왔지만 아깝지 않았다. 다행히 구단에서 택시비를 대줬다"며 감사해 했다. 그만큼 그에게는 간절한 시즌. 올 시즌을 마치면 군입대해야 하는 이희근은 남은 시즌 유종의 미를 거두고픈 마음이 크다. 1군 복귀 둘째날 결정적 순간 몸을 아끼지 않는 투혼과 혼신의 항의로 역전승의 주역이 된 이희근. 그의 간절함이 짜릿한 역전극으로 장식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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