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는 보검도 너무 자주 꺼내들면 결국 칼날이 닳게 마련.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더 많아지면 계투 필승조와 추격조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경우가 오고 결국 특정 투수가 너무 자주 나오는 경우도 있다. 두산 베어스의 9년차 우완 노경은(27)이 점차 무너지고 있다.
노경은은 지난 25일 문학 SK전서 4-3으로 앞선 4회 선발 김승회의 바통을 이어받았으나 2⅔이닝 6피안타 4실점(3자책)으로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노경은은 올 시즌 37경기 5승 2패 3세이브 2홀드 평균자책점 5.23(25일 현재)을 기록 중이다.

25일 기록만 보면 분명 좋은 투구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최근 1주일 동안 무려 5경기에 나섰다. 8월 팀이 치른 20경기 중 12경기에 등판한 노경은의 8월 성적은 2승 1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9.49(12⅓이닝)에 피안타율은 무려 4할1푼4리에 달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리드 상황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끌려가는 순간에도 번번이 나선다는 것. 그동안 부족했던 1군 경험을 쌓아주는 측면이라고 보기는 등판 빈도가 잦다. 마치 2009년 LG의 정찬헌(공익근무 중)이나 한화 양훈의 모습을 연상케한다. 정찬헌과 양훈 모두 하위팀에서 가장 믿을만한 계투 요원 중 한 명이었고 상황을 가리지 않는 '마구잡이식' 등판 빈도가 많았다.
2008년 2차 전체 1순위로 지명되며 많은 기대를 모았던 정찬헌은 2009년 55경기에 나서 6승 5패 2세이브 10홀드 평균자책점 5.78의 성적을 올렸다. 확실한 승리 계투조가 아니라 취약한 투수진으로 인해 4점 차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자주 등판했다. 타선이 터질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추격조로 등판도 잦았다. 결국 정찬헌은 지난해 심한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수술받고 병역 의무를 소화 중이다.
양훈은 2009시즌 67경기에 나서 3승 6패 1세이브 11홀드 평균자책점 4.38을 기록했다. 한대화 감독의 취임 이후 가장 강력한 마무리감 중 한 명이었으나 그는 지난해 상당 기간 동안 제 구위를 찾지 못했다. 결국 양훈은 지난 시즌 46경기 4승 5패 8세이브 3홀드 평균자책점 6.46으로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받았다.
노경은의 2011시즌 등판을 보면 2년 전 정찬헌-양훈처럼 전형적인 하위팀의 '계투 카드'를 연상케한다. 그도 그럴 것이 마무리 임태훈이 개인사로 인해 전열 이탈했고 사이드암 고창성도 걷잡을 수 없는 제구 난조로 2군에 가 있다. 셋업맨 정재훈은 어깨 부상을 겪은 뒤 아직 '보호 관찰 대상'으로 분류되어 있다. 후반기 복귀가 예상되던 이재우는 팔꿈치 인대가 또다시 끊어지며 시즌 아웃되고 말았다.
선발진도 좋은 편이 아니다. 더스틴 니퍼트-김선우가 원투펀치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으나 이용찬은 초보 선발로 과도기를 겪는 중. 더욱 치명적인 것은 페르난도 니에베가 팔꿈치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가며 로테이션 공백을 낳았다. 그로 인해 롱릴리프 요원으로 편성되었던 김승회가 4선발로 뛰고 있고 잔류군서 불펜 1회 최대 70구로 채 몸이 만들어지지 않았던 김상현이 5선발로 뛰고 있다. 결국 가장 힘을 쓰는 투수는 구위가 제일 좋은 노경은이다.
계투 요원의 연투는 오히려 1경기서 많은 공을 던지는 선발 투수보다 더욱 위험할 수 있다. 특히 계투 요원은 정작 경기에 등판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몸을 풀어라'라는 지시에 2~30개 가량의 공을 던지며 어깨를 덥힌다. 1주일 동안 5경기 등판이었다면 사실상 거의 매 경기 불펜에서 출장 대기했다는 이야기와도 같다.
코칭스태프가 관리해주지 않으면 자칫 위험한 지경에 이를 수 있다. 투수의 어깨는 철저한 관리가 따르지 않는 한 쓰면 쓸 수록 닳는 지우개와도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그날의 승리가 필요한 순간 지키면서 따라잡고 싶은 코칭스태프는 가장 먼저 불펜에서 믿을만한 선수의 얼굴을 주시하는 경우가 많다. 투수 분업화의 정착 이후 하위팀이 보여주는 투수 운용 중 하나로 '악순환'이라는 복선도 숨어있다.
결국 새로운 누군가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면 남은 시즌 동안 노경은이 고생하는 경기는 더욱 많아질 수 있다. 이는 7위까지 추락한 두산 투수진에 잠재한 커다란 위험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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