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손남원의 연예산책] 강풀의 인기 만화들은 거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원작 만큼의 호응과 흥행 성적을 거두는 데는 실패했다. 특히 강풀의 매력이 제대로 풍기는 멜로 쪽은 '바보'부터 '순정만화'까지 당초의 큰 기대에 못미쳤다는 평가다. 그렇다면 올 가을 개봉할 '통증'은 어떨까?
'통증'은 곽경택 연출에 권상우 정려원이 주연을 맡았다. 강풀의 감성적이고 애잔하며 감칠맛 나는 멜로를 잘 표현할수 있을지에 의문을 가져볼만한 조합이다. 그러나 관객 물음표와 달리 이들은 지금까지 각자가 가졌던 개성은 죽이고 원작의 캐릭터와 묘미를 살리면서 새로운 '강풀 표 스크린 멜로 수작'을 만들어냈다. 올 가을 오래만에 극장에서 훌쩍거리는 여성 관객들이 부쩍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한류스타 권상우의 까까머리 순정남 열연은 가슴 한켠을 시리게 만들고 어느 순간 강한 척 두 눈 부릎뜬 사나이(?) 눈에서마저 눈물이 찔끔 나게 만든다. 장동건이 곽 감독의 '친구'에서 배우로 다시 태어났듯이, 권상우도 곽 감독의 '통증'에서 스타의 겉치레보다는 배우로서의 진솔한 면모를 99% 과시하고 있다.
사실 강풀의 만화를 스크린에 옮기기는 어렵고 힘들다. '타짜' '비트' '식객'의 허영만 만화처럼 박진감 넘치는 빠른 전개, 의외의 반전, 그리고 격렬한 사랑 등 영화적 요소들이 차고 넘치는 스토리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강풀 작품은 프레임 하나 하나에 방점이 찍힌다. 그 틀안에 펼쳐진 남 녀 주인공의 구도와 얼굴 표정부터 휘날리는 눈발, 리어카 행상 위에 펼쳐진 목도리 등 배경까지 수채화같은 한 칸 그림 안의 소소한 모든 걸 눈여겨 봐야만 감칠맛을 알 수 있는 만화다. 긴 대사 보다는 짧고 응축된 몇 마디, 그리고 캐릭터들의 커다란 눈망울에 애틋한 사랑과 잔잔한 감동을 담고는 가끔씩 톡톡 튀는 행동을 곁들여 독자들에게 '풋' 터지는 실소를 덤으로 선물하는 식이다.
그렇다보니 이같은 강풀 식 정서를 영화에 담기란 보통 난해한 작업이 아닐 수밖에. 만화 주인공들의 표정 연기를 실사의 남 녀 배우들이 어떤 식으로 소화할지가 늘 관심사였다. '바보'는 차태현, '순정만화'는 유지태가 주연을 맡았다.
'친구' '똥개' '사랑' 등 전작에서 이미 거칠고 투박하지만 진솔한 인간세상을 여과없이 묘사했던 곽 감독은 강풀의 원작을 만나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역시나 묵직한 진정성으로 승부하면서 배우 권상우에게도 잔재주 부리지않는 날 것 그대로의 연기를 주문한 듯 하다.
결과적으로 TV 드라마 '대물'로 화려하게 부활한 권상우는 그의 출세작 '말죽거리 잔혹사' 때 보여줬던 열연 이상의 호연으로 곽 감독의 요구에 답했다. 신작 '통증'에서 한류스타 권상우는 온데간데 없고, 교통사고로 부모와 누나를 잃은 뒤 온 몸의 통증마저 없어질 정도의 트라우마에 빠져 사는 순정남 박남순(남진)만이 스크린을 활보한다. 대사 보다 표정과 움직임만으로 너무나 많은 걸 전달해야하는 강풀 만화의 순정남이 그를 통해 스크린에서 환생한 것이다.
박남진(권상우 분)은 마치 잔인한 조폭영화의 라스트 신처럼 매번 두들겨맞고 피흘리며 쓰러지지만 액션은 같되 정서는 멜로의 그것이다. 권상우가 감지하지 못하는 통증은 그대로 관객에게 전해져 끝내 강풀의 최루성 멜로 엔딩에 감탄하며 손수건을 꺼내게 만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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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민경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