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우 "실패해도 두렵지 않다" [인터뷰]
OSEN 이혜진 기자
발행 2011.08.30 09: 11

배우 권상우는 굴곡 많은 인생을 살았다. 어느 인생이라고 크고 작은 굴곡이 없겠냐만은 권상우는 배우 이전부터, 배우로 데뷔했을 당시 그리고 톱스타가 된 이후에도 크고 작은 사건들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 운명처럼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배우 권상우’에게 상처만 남긴 게 아니었다. 권상우는 국내 스크린 복귀작 ‘통증’을 통해 울분의 에너지, 그간 남모르는 노력으로 쌓아뒀던 응축된 저력을 여실히 보여줬다.
영화 ‘통증’은 어린 시절 자동차 사고로 가족을 잃은 죄책감과 그 사고로 인한 후천적인 후유증으로 통증을 느낄 수 없게 된 남자 ‘남순’(권상우)과 유전으로 인해 작은 통증조차 치명적인 여자 ‘동현’(정려원)의 강렬한 사랑을 그린 감성 멜로.

권상우는 삶은 계란 노른자를 목구멍으로 밀어 삼키는 것처럼 팍팍하기만 ‘남순’의 삶을 완벽하게 그려냈다. 지금껏 맡았던 캐릭터 중 가장 비루한 ‘남순’ 역에 대해 권상우는 “대한민국에서 나보다 더 이 역할을 잘 할 배우는 없다”고 자신했다.
“시나리오를 보고 내가 딱 인 것 같았다. 남순 역은 장동건, 송승헌 그 누구도 할 수 없다. 나는 유년시절 입체적인 경험을 많이 했다. 생후 6개월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땐 친척집을 전전했다. 남순은 내가 한번 제대로 한번 할 수 있다는 느낌이 왔다. 소위 권상우 하면 ‘말죽거리 잔혹사’를 떠올리는데 이제는 ‘권상우는 통증이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
권상우는 자신을 잘 아는 배우다. 원조 한류배우로, 올해 중국 진출에 이어 내년 할리우드 진출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도 그는 “더 채찍질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었다.
“나는 장점이 두 개 있다. 군대 다녀와서 데뷔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인기는 덧없고 시간이 빨리 간다는 걸 안다. 또 나는 내 능력을 잘 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선택했고 앞으로 미래에 대한 계획도 철저하다. 나는 이순재 선생님처럼 평생 연기를 할 재목은 못된다. 다만 내가 자신 있고 보여줄 수 있는 게 남아있을 때까진 연기를 하고 싶다. 그래서 빨리 많은 작품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모든 작품이 다 잘 됐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실패하는 게 두렵지 않다. 그 과정에서 또 좋은 작품을 만날 테니까.”
권상우는 꿈, 성공, 가족이란 키워드로 압축된다. 그 과정에서 오해와 편견들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는 움츠러들기보다 당당함을 택했다.
“나에 대한 편견이 있다는 걸 안다. 현장에서 컨트롤하기 힘든 배우, 무서운 선배 등. 가장 듣기 거북한 말은 ‘운이 좋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위험한 액션 씬을 내가 직접 하겠다고 액션 팀과 싸운 적도 있고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고 현장에 늦지 않게 가고, 캐릭터를 치열하게 고민한다. 살짝 느슨해지면 뚝 떨어질 거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조금만 지체해도 성패가 달라진다. 운이 좋다고? 내가 이룬 건 운으로 되는 게 아니다.”
그는 인기의 덧없음을, 세월의 무상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배우다. 그래서 일본에 이어 중국, 미국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한 지금도 무엇이 가장 중요한 지를 잘 간파하고 있었다.
“해외활동도 한국에 뿌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다. 국내에서 연기로 인정받지 못했다면 해외활동은 나 스스로도 인정하지 못했을 거다. 내공이 낮으면 해외에 나가도 금방 한계가 드러난다. 올해는 씨를 뿌리는 단계에 불과하다. 얼마나 수확을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중화권에서도 안정적으로 캐스팅 됐으면 좋겠고 미국에서도 종종 나를 찾을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50대쯤엔 내 아내, 자식들 그리고 어머니에게 내 시간을 할애하면서 살고 싶다.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으니까 더 늦지 않게 인생을 즐기며 살고 싶다.”
그의 동력은 뚜렷한 목표의식, 배우로서의 열정, 그리고 가족이었다. 권상우는 그래서 “이제 상 욕심도 생긴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향수가 없다. 아버지에 대한 잔상이 없어 아들에게 어떤 아빠가 되어야 하나 고민이 많다. 서로 나이가 들어도 볼에 뽀뽀할 수 있고 안아줄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도록 아들에게 사랑 표현을 많이한다. 아들은 내가 죽어서도 영화를 통해 나를 볼 수 있다. 부끄럽지 않은 영화를 통해 ‘옛날 영화라도 우리 아빠는 참 멋있다’는 생각을 아들이 했으면 좋겠다. 흥행이 바탕이 돼 공신력 있는 상도 받고 싶다. 아들에게 네티즌상, 인기상만 보여줄 수 없지 않나.(웃음)”
‘통증’의 ‘남순’은 남을 다치게 하는 대신 자해공갈로 상대를 위협하고 말 대신 몸으로 대화하며 트라우마를 표현해 낸다. 그런 ‘남순’으로 분해 온몸으로 맞는 액션 연기를 소화해 낸 권상우는 과장된 몸짓을 보이거나 흥분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눌하고 다소 모자라 보이기까지는 불안한 몸짓으로 관객을 빨아들인다.
이런 ‘남순’ 역에 자신보다 더 잘 어울리는 배우는 없을 거라 단언하는 권상우에게는 탑스타의 권위 의식도, 자만심도 보이지 않았다. 언론 시사를 통해 공개된 ‘통증’은 권상우의 이유 있는 자신감을 증명했다. 물이 오른 그의 연기가 유독 돋보이는 ‘통증’은 해외 진출을 앞두고 있는 그에게 몇 할의 자신감을 더 보탤 것으로 보인다.
권상우, 정려원 주연의 ‘통증’은 내달 7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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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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