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여름으로 갈수록 잘했다".
한화 포수 신경현(36)의 방망이가 예사롭지 않다. 신경현은 지난 4일 대전 넥센전에서 만루홈런을 폭발시켰다. 0-0으로 팽팽히 맞선 4회말 2사 만루에서 넥센 선발 브랜든 나이트의 2구째 120km 슬라이더를 제대로 받아친 것이 중앙 담장을 넘어갔다. 신경현은 포효했고 경기는 한화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었다. 전날이었던 3일 경기에서는 2-3으로 뒤진 8회말 넥센 마무리 손승락을 상대로 우중간 가르는 동점 2루타로 승리의 밑거름이 됐다. 한대화 감독은 "연이틀 신경현이 대단히 좋은 활약을 했다"고 칭찬했다.
신경현은 후반기 한화 타선의 요새가 됐다. 후반기 23경기에서 58타수 21안타 타율 3할6푼2리로 불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같은 기간 동안 볼넷도 6개를 얻어내 출루율은 4할2푼2리. 후반기 23경기에서 담은 12타점이 전반기 60경기에서 기록한 11타점을 넘어선다. 그토록 기다린 마수걸이 홈런도 그랜드슬램으로 장식. 그는 "원래 여름으로 갈수록 잘했다"며 대수롭지 않아 했다. 물론 이렇게 돌아온 데에는 오랜 시간과 시행착오가 있었다.

신경현은 "작년에 데뷔 후 가장 많은 10개의 홈런을 쳤다. 올해도 크게 쳐보려고 의식적으로 하다 보니 타격 밸런스가 무너졌다"고 돌아봤다. 후반기부터는 특유의 밀어치기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바깥쪽을 가볍게 밀어친다는 생각이다. 하위타순이니까 살아나가는데 중점을 두니 감이 올라오더라"고 설명했다. 상대 투수 공에 뭔가 밀리는 인상을 주지만 정확하게 툭툭 갖다 댄 타구가 안타로 연결되고 있다. 타석에서 집중력도 향상돼 종종 이용규를 연상시키는 커트 행진도 벌인다.

하지만 신경현의 진짜 가치는 포수 본연의 역할에 있다. 어리거나 1군 경력이 많지 않은 선수가 많은 한화 투수진은 전적으로 신경현의 리드를 의지하고 던진다. '에이스' 류현진에서 시작된 "신경현 선배 리드대로 던졌다"는 한화 투수들의 단골멘트가 됐다. 그런데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류현진은 "신경현 선배의 사인을 거부하면 꼭 안타를 맞는다"고 할 정도로 신뢰가 깊다. 수년간 쌓은 경험과 노련미로 상대 타자와의 수싸움을 벌인다. 최근 한화 투수들의 탈삼진이 늘어난 것도 과감하게 허를 찌른 공격적인 투수리드의 신경현 공이 크다. 게다가 도루저지율도 전반기 1할2푼5리에서 후반기 3할6푼4리로 크게 향상됐다.
그의 또 다른 가치는 리더십이다. 신경현은 올해 3년째 한화의 주장 완장을 차고 있다. 그러나 3년 내내 팀 성적이 하위권에 있는 만큼 그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 시즌 초반 한화가 극도의 부진에 빠졌을 때였다. 빈타에 허덕이며 패한 어느 날 선수들이 서둘러 퇴근하자 주장 신경현이 방망이를 들었다. 그리고는 "언제까지 이렇게 야구할거냐"며 그라운드로 나가 스윙했다. 그때부터 한화의 야간자율훈련이 시작됐다. 그 장면을 지켜본 한대화 감독은 "신경현이 주장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있다"며 두둑한 신뢰를 나타냈다.
신경현은 올 시즌을 마치면 FA 자격을 얻는다. 그는 지난 1998년 한화 입단 후 올해로 14년째 독수리 유니폼만 입고 있다. 빙그레 시절 포함 가장 오랜 기간 이글스의 안방을 지켰다. 올해 잦은 부상으로 고생했지만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는 "올해 이상하리만큼 파울 타구에 무릎을 많이 맞는다. 그 때문에 2군에도 두 번이나 다녀왔다. 하지만 포수는 늘 이런 불안을 안고 뛰는 자리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 만큼은 꼭 알아줬으면 좋겠다"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누가 뭐래도 한화 최고의 포수는 신경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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