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찬익의 200자 야구] 고 장효조 감독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OSEN 손찬익 기자
발행 2011.09.07 11: 35

2011년 9월 7일. 프로야구계의 큰 별이 졌습니다. 현역 시절 '타격의 달인'으로 불리던 장효조 삼성 2군 감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55세. 올스타 브레이크를 전후로 몸에 이상을 느낀 장 감독은 병원에서 정밀 검진을 통해 위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7일 오전 하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지난 2007년부터 OSEN의 삼성 담당 기자로 활동 중인 기자가 바라보는 장 감독은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였습니다. 항상 올백 머리를 고수해 '장무스 쌤'이라고 불리던 장 감독은 겉으로는 무뚝뚝하지만 따뜻한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야구를 사랑하는 분이었습니다.
장 감독은 경산 볼파크 숙소에 머무르며 2군 유망주 육성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습니다. 될성 부른 떡잎이 있으면 자정이 넘더라도 함께 땀을 쏟아냈습니다. 그는 항상 말했습니다. "머리가 나쁜 건 무덤까지 가는 것이지만 실력은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5월에 복귀한 김동명(포수)에 대해서는 "저 놈, 나한테 많이 혼나야 돼"라고 칭찬보다 질책을 선택했습니다. 겉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김동명은 무조건 성공할거야. 내가 된다면 되는거야".
7월 중순 취재차 경산 볼파크에 갔을때였습니다. 장 감독은 호주에 있는 아들에게 레전드 올스타 화보 촬영 사진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손 기자, 우리 아들에게 이 사진을 보내고 싶은데 방법 좀 알려줘". 그리고 이메일에 사진을 첨부해 전송하는 방법을 익혔습니다.
"이야, 진짜 세상 좋아졌네. 고마워. 손 기자 덕분에 하나 배웠네. 이 사진 잘 나왔지? 우리 아들이 보면 좋아하지 않을까?". 항상 엄한 분이었던 장 감독에게서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습니다. '여느 아버지와 같은 마음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날이 기자와 장 감독의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그의 소중함을 확인하는 것 만큼 잔인한 일은 없습니다. 오늘 역시 그렇습니다. 아주 아주 먼 곳으로 떠난 장 감독의 영원한 안녕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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