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면 볼수록 매력덩어리다. 시원시원한 파이어볼을 뿌리다가도 움찔할 수 밖에 없는 낙차 큰 변화구는 화려함까지 갖췄다. SK 8년차 유망주 우완 투수 윤희상(26)이 결국 고대하던 1승을 품었다.
윤희상은 7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넥센과의 원정경기에서 선발 등판, 5⅓이닝 동안 3피안타 1볼넷 3탈삼진으로 무실점하며 승리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이날 윤희상은 최고 149km까지 나온 직구와 120km대 슬라이더와 포크볼로 넥센 타선의 약점을 파고 들었다. 단 한 번도 연속 타자 출루를 허용하지 않은 것은 물론 공격적이고 효과적인 피칭까지 선보여 선발 투수다운 면모를 유감 없이 발휘했다.
경기 전 이만수 SK 감독대행이 "고든 외에는 이렇다 할 선발 투수가 없다"면서 "이번 주말까지 계속 임시 선발로 메워가야 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던 걱정거리를 말끔하게 날려준 피칭이었다. 이날 피칭으로 윤희상은 사실상 시즌 후반 등판까지 보장을 받았다.

윤희상은 이날 경기 후 인터뷰에서 "얼떨떨하고 기쁘다. 어떻게 던졌는지 잘 모르겠다. 감독, 코치님들 얼굴만 떠올랐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나 생전 처음 여러 취재진들의 관심을 받자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다"고 당황스런 표정을 짓기도 했다.
윤희상은 TV를 비롯한 언론과의 공식 인터뷰가 끝난 후 "아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머리가 하얀 백지상태였다.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고 쑥스러워했다.
올 시즌을 앞둔 오키나와 스프랭캠프가 한창일 때 윤희상은 "이번 캠프의 키워드는 '깨달음'이다. 8년차 동기인 임훈, 정우람은 팀 주축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표현했다. 2004년 선린인터넷고를 졸업하며 2억 원의 계약을 받고 'SK 2차 1번(전체 3번)'으로 입단한 윤희상 자신의 자존심을 스스로 꺾는 말이었다. 그만큼 올 시즌 만큼은 반드시 뭔가를 이뤄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군입대 공백을 겪은 윤희상은 1승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솔직히 전에는 야구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내가 야구선수였지만 공익근무를 하면서야 비로소 야구에 관심을 가졌다"고 고백한 그는 "1승이 내게는 뭔가 계기가 될 것 같다. 1승만 하면 많은 것 바뀔 것 같다"며 "그것이 패배의식도 벗게 해줄 것"이라고 확신을 가졌다.
결국 1승을 따낸 윤희상이다. 이에 그는 "모르겠다. 그런데 뭔가 마운드에서 생각이 바뀌었다"면서 "사실 오늘 평소 던지는 것과는 다른 패턴으로 던졌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더 낫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다음 경기에서 한 번 더 던져 보면 확실히 알 것 같다"고 활짝 웃어보였다.
윤희상의 볼을 잡은 포수 정상호 역시 "전에는 불리한 상태가 되거나 안타를 맞으면 자신감이 떨어졌다"면서 하지만 오늘은 맞아도 자신감을 가진 채 자기 볼을 던지더라"고 후배를 기특하게 쳐다봤다. 그러자 윤희상은 "포크볼 등 잡히는대로 느낌이 좋은 공이 있었는데 마침 상호형이 그 볼에 대한 사인을 내줬다"면서 "1회부터 마운드에서 내려올 때까지 상호형 미트만 보고 계속 집중한 것이 좋았던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만 먹으면 150km대 구속은 언제든 찍을 수 있는 윤희상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위력적인 경기운영 방법의 묘미를 깨달았다는 점에서 윤희상의 남은 시즌에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다. 구멍난 SK 선발진의 보석 하나가 가공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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