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그들의 승리를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들은 '불가능은 없다'라는 나폴레옹의 말처럼 한 편의 짜릿한 감동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1년 단위 리그 첫 2연패,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순간이었다.
1년 단위 시즌으로 처음 열린 2009-2010시즌을 우승했지만 KT는 디펜딩챔프로 우승후보가 아닌 중간 이하의 평가를 받고 2010-2011시즌을 시작했다.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2라운드 2주차서 4승 9패로 공군 보다 뒤떨어지는 최하위에 랭크됐고, 이영호 원맨팀의 인식을 벗어나지 못한채 허우적거리는 양상까지 보였다.
위너스리그서 이영호와 김대엽 우정호 트로이카의 활약으로 다시 치고 올라가며 정규시즌 2위까지 올라갔지만 우정호가 백혈병으로 빠지면서 다시 주춤한 KT는 정규시즌 3위로 포스트시즌을 시작해야 하는 최악의 처지가 됐다.

누가 생각해도 최악의 순간, KT에는 '영웅' 박정석(28)과 '최종병기' 이영호(19)가 있었다. 단순하게 선배이기 때문에 주장이기 때문에 맡은 책임감이 아닌 KT의 혼을 자처한 박정석과 현존 최강의 프로게이머 이영호가 만들어낸 하모니는 동료들의 승부욕을 이끌어내면서 KT의 프로리그 2연패라는 결실의 발판이 됐다.
KT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대표할 박정석과 이영호를 KT 우승 포상 전지훈련을 떠난 괌에서 OSEN이 만났다. '베프(베스트프랜드)'라는 이영호의 말처럼 박정석과 이영호는 이번 전지훈련 내내 친형제나 절친한 친구처럼 참 사이가 좋았다. 두 사람 사이의 9년이라는 나이 차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그들에게는 e스포츠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열정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4년전인 2007년 봄 당시 만남에 대해 박정석은 "지금 돌아봐도 그렇고 그 당시에도 정말 굉장했다. 사실 처음에는 잘한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하지만 상대보다 한 발 앞서가는 (이)영호의 스타일을 몸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라고 이영호에 대한 첫 인상을 회상했고, 이영호 역시 "당시 자신감에 넘쳐있었다. 팬택에서 어느 정도 내 실력이 완성됐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KT에 오니 선배들이 너무 잘했다. 당시에 (박)정석이형, (강)민이형, (김)윤환이형은 이기기 쉽지 않았다. 선배들이 좋은 가르침에 실력이 더욱 늘 수 있었다"라고 활짝 웃었다.

▲ 화려했지만 역경이 함께 했던 과거
1999년 12월30일 'N016 온라인 프로게임단'이라는 이름으로 창단된 KT는 2002년 이후 '게임계의 레알 마드리드'로 불리우며 그 세를 급격하게 불렸다. 홍진호 강민 김정민 박정석 조용호 변길섭 이병민 등 임요환을 제외한 특급 스타 플레이어들을 영입하면서 e스포츠 최고의 팀으로 각광받았다.
스타급 선수들로 구성된 효과는 바로 리그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2004 스카이 프로리그' 3라운드 정규시즌 우승에 이어 2005 스카이 프로리그 전기리그까지 정규시즌 전승 우승을 달성했고, 그해 23연승이라는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최고 연승기록을 달성했다. 그 중심에 있던 이가 '영웅' 박정석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박정석에게는 마지막 결실이라고 할 수 있는 단체전 우승 트로피와 개인전 우승트로피가 그 시절 주어지지 않았다. 최고의 팀이었지만 행운의 여신은 KT에 웃어주지 않았다. 무려 7번의 단체전 준우승. 박정석이 가지고 있는 씁쓸하면서도 아픈 추억이다.
박정석은 "돌아보면 아쉬움의 연속이었다. 모두가 다 잘하는 선수고, 열심히 하는데 이상하게 우승하고만 인연이 없었다. 지금하고 비교해도 전력 자체가 최고였다. 준우승으로 인해 오히려 우리가 평가절하 됐다고 할 정도니깐, 그래도 이상하게 서로 라이벌의식이 우리를 뭉치게 하기 보다는 서로를 견제하는 모양새였다. 지금으로 치면 모두가 이영호라고 생각했었다. 지나친 경쟁의식, 자존심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조금만 더 빨리 깨달았다면, 지금과 마음가짐, 서로를 조금만 더 배려하고 뭉쳤다면 우리에게 적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23연승을 하던 시절을 회상했다.
2007년 KT에 합류한 이영호는 입단하자마자 샛별처럼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주전자리를 궤찼다. 2007년 리그 신인왕을 차지하고, 2008년 개인리그 첫 우승을 차지하며 승승장구를 이어갔지만 주전들의 노쇠화와 세대교체로 인해 이영호 1인의 분전으로 만회하기에 리그 우승은 너무나 높은 장벽이었다.
이영호는 "형들이 자리를 비우고, 내가 팀의 기둥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사실 힘들었다. 두개의 개인리그와 프로리그를 소화하기에 너무 일정이 무리였다. 2008시즌 2008-2009시즌이 제일 고비였던 것 같다. 다행히 2010년 개인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어느 정도 여유를 찾았고, 동료들과 화합하면 더욱 좋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깐 잘 풀리기 시작했다"라고 힘들었던 2009년에 대해 얘기했다.

▲ 최고 보다는 최선을 다해서 만든 현재의 우승
단체전에서는 개인의 능력보다 중요시 되는 요소가 조화다. 아무리 최고의 선수가 있어도 혼자서 모든 경기를 책임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정석의 합류는 KT에 최고의 효과를 만들어냈다. 레전드로 불리우는 그의 경험은 어린 후배들을 이끌었고, 코칭스태프와 가교 역할을 하면서 시너지를 내기 시작했다. 최하위까지 내려가며 바닥을 쳤던 KT의 성적도 박정석이 팀에서 자리를 잡아가면서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박정석은 "과거에 연연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옛 명성에 의존해서 현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건 나한테도 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올드게이머가 경기를 조율하거나 분석하는 능력은 지금 시작하는 선수들 보다는 조금 더 날카롭다고 생각한다. (고)강민이라든지 (김)대엽이라든지 후배들이 조언을 구하면 내 나름대로 연구하면서 도움을 주려고 했을 뿐이다. 예전과 비교한다면 지금 우리 팀과 같은 없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배려하고 헌신적이다. (이)영호도 마찬가지다.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 아닌 조언에 대해 아낌없이 받아들인다"며 설명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이영호도 "(박)정석이형 역할이 정말 크다. 10년 넘게 형이 경험했던 일들이 나에게는 큰 자산이 됐다. 나 뿐만 아니라 팀원들에게도 큰 역할이 됐다. 팀원들을 믿기 시작하면서 나에 대한 자신감도 커졌다"면서 "2010년 짧은 시간이지만 겪었던 경험들은 앞으로 프로게이머 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맞짱구를 쳤다.

▲ 이영호가 생각하는 KT의 미래
프로리그 2연패를 달성한 KT의 주전들의 평균나이는 예전과 비교해서 매우 어리다. 이영호는 "스무살만 3명이다. (고)강민이형도 어리기 때문에 내년 시즌에도 우리가 우승한다는 자신감이 있다. 우스개 소리도 나만 잘하면 된다. 전지훈련 복귀 이후인 오는 19일 오른팔 수술이 예정돼 있다. 걱정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 이지만 충분히 극복할 자신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영호가 다음 시즌 또 꿈꾸는 것이 있다. 수술후 복귀한 자신이 기량을 펼쳐내는 것도 있지만 예전처럼 e스포츠가 다시 한 번 뜨거운 붐을 타는 것. 팬들에게 감동을 주는 경기를 자신 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만들어내면서 더 많은 이들이 e스포츠에 관심을 갖게 만들게 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당장의 앞을 보기 보다는 더 먼 미래를 내다보며 최선을 다하는 박정석과 이영호, 그들의 조화가 더욱 잘 될 수록 KT 뿐만 아니라 e스포츠 미래가 더욱 밝아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박정석과 이영호가 만들어나갈 2011-2012시즌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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