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을 짧게나마 가르쳐 본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영리한 야구를 펼치며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던 선수. 그러나 선수 생명에 큰 위기가 된 부상으로 인해 방출되었고 이후 5년 간 선수로는 소속이 없었다. 일본 진출도 고려했으나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모교 코치로 급선회했던 남자는 이제 새로운 팀에 몸 담기 위해 도전장을 던졌다.

김동규(25. 전 SK 와이번스). 장충고 출신으로 지난 2005년 2차 3순위 지명을 받아 SK 유니폼을 입었던 176cm 78kg 체격의 우투좌타 내야수 김동규는 고교 시절 광주 동성고 이원석(두산)과 함께 좋은 유망주로 꼽혔던 선수다. 이원석이 컨택 능력과 안정적인 수비 능력에서 점수를 얻었다면 김동규는 빠른 발과 작전수행능력에서 좋은 평을 얻었던 바 있다.
그러나 김동규는 프로 데뷔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른 무릎 반월판 연골 손상으로 수술을 받은 뒤 이듬해 방출되고 말았다. 이후 공익근무로 병역 의무를 해결한 김동규는 2008시즌 후 두산의 테스트를 받았으나 합격 통지를 받지 못했다.
뒤이어 일본 간사이 리그 진출을 노렸던 김동규. 몇몇 팀에서 러브콜을 보내왔으나 전체적으로 이 리그서는 선수 한 명 당 월봉 10만엔이 채 되지 않았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김동규 입장에서는 선뜻 대한해협을 건너기 어려웠던 조건.
2009년 초 실업야구 트라이아웃도 참가해 좋은 평을 받았으나 이 또한 국내 잔류가 아닌 일본 독립리그 진출의 한 경로였다. 그로 인해 김동규는 다시 고개를 떨궈야 했다.
"무릎 부상은 이미 예전에 다 나아졌어요. 야구를 하고 싶어서. 그래서 왔다갔다 했었지요. 그런데 제가 기회를 못 살리는 바람에 안타까운 일이 많았습니다. 최근 몇 년간 그걸 느끼면서 '아, 이런 기회가 쉽게 오는 게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김동규는 모교인 장충고의 배려 속 코치로 재직하며 후배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신생팀 NC의 탄생과 함께 숨겨뒀던 야구 열정이 꿈틀댔다. 아직 선수로 뛰고 싶다는 열정이 가득했던 김동규는 다시 한 번 도전장을 던졌다.
"코치하다가 다시 선수로 도전하려니 힘드네요.(웃음) 그동안 시시때때 연습은 했지만 아무래도 부족한 실전 감각은 어쩔 수 없더라구요. 많이 쉬기도 했고 생각만큼 몸이 잘 움직이지는 않고. 그래도 저 뿐만 아니라 다른 테스트 선수들도 다들 공평하게 기회를 얻으니 크게 신경쓰지 않고자 합니다".
지난 7일 2차 트라이아웃까지 끝난 현재 1차 합격자로 트라이아웃에 참가했던 김동규의 NC 합류 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야수진에서 가장 점수가 높은 축에 속했던 선수였다. 일단 김동규는 결과보다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다는 점에 스스로 만족한 모양이었다.
"합격한다면요? 이제는 야구를 정말 잘 하고 싶습니다. 체계적으로 훈련해서 제 기량을 쌓는 데 중점을 두고 싶네요. 아직 체력적으로 부족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인데 정신적인 면에서는 확실히 나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야구를 잘 하고 싶어요".
트라이아웃 마지막 청백전서 김동규는 수술 받은 부위에 투구를 맞아 한동안 일어나지 못하는 아찔한 장면을 연출했다. 그러나 3분 정도가 지났을까. 김동규는 옷에 묻은 흙을 훌훌 털고 걸어나간 뒤 경기 끝까지 2루 수비까지 책임졌다. '야구를 정말 잘 하고 싶다'라는 그의 오기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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