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름발이 말과 시력을 잃어가는 기수의 이야기를 담은 감동 실화 ‘챔프’는 온도차가 확실한 영화다. 관객을 웃길 땐 눈물이 찔끔 나게 웃기고, 울릴 땐 콧물까지 쏙 뽑아낸다. 주연 차태현이 관객의 심금을 울리면, 조연 김상호는 관객의 배꼽을 뺀다.
언론 노출을 꺼리던 배우 김상호가 ‘챔프’ 촬영 후엔 인터뷰를 자청했다. 그간 자신이 출연한 영화들을 가족과 함께 보지 못했다던 김상호는 “개봉 날 아내, 아이들과 같이 보기 위해 언론시사 때도 일부러 영화를 보지 않고 꽁꽁 아껴뒀다”며 연방 미소를 지었다.
가족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첫 영화란 점 외에 그가 ‘챔프’에 남다른 애착을 갖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추석 때 많은 영화들이 나오겠지만 ‘챔프’는 분명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엔 감동과 눈물이 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면 출연하지 않았을 거다. ‘챔프’엔 도전이 있다. 루저들, 사회적 약자들, 쓰러진 자들이 도전한다는 것. 그 힘이 너무 좋았다.”

올 초 개봉한 ‘모비딕’에서 촌스러운 사투리를 구사하지만 예리한 사회부 기자 역을 맡았던 김상호는 이번 ‘챔프’에선 말을 잘 다루지 못하는 기마경찰 역을 맡아 코믹 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몸개그를 방불케 하는 연기로 자칫 지루하고 무거워질 수 있는 영화에 잔재미를 더하며 균형을 맞춘다.
“당나귀를 탔다가 떨어지는 장면 등 망가지는 장면이 많은데 실제 촬영은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대신 말은 개처럼 훈련해서 연기를 할 수 있는 동물이 아니라 마음에 드는 컷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힘들었다. 말은 덩치는 크지만 겁이 많고 마음이 여리다. 사랑스러운 동물이다.”
김상호는 영화뿐 아니라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MBC 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 SBS ‘시티헌터’에서도 명품 조연연기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높은 인기를 구가했던 드라마에 잇달아 등장하며 인지도도 높아졌다.
“길을 걸어 가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알아본다. 내 연기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게 즐겁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 한 일이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아내를 만난 것, 둘째는 배우란 직업을 선택한 것이다. 만족감이 큰 만큼 불안감도 크다. 내가 좋아하는 이 직업을 평생 못하면 어쩌나, 아무도 찾아주지 않을까봐 걱정이 된다.”
영화 ‘모비딕’에 이어 ‘챔프’, 배우 김윤석과의 친분으로 우정출연을 한 ‘완득이’ 촬영은 물론 잇달아 히트 친 드라마에, 차기작 촬영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불쑥 진지한 고민을 꺼내 놓은 김상호의 모습에선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그가 갖는 절실함과 애정 그 이상의 뜨거운 감정이 느껴졌다.

흔히 사람들은 그를 ‘명품 조연’이란 타이틀로 기억한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주인공만큼의 존재감으로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 김상호는 그런 역할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최근 인기 예능프로그램 ‘1박2일’에서 명품 조연 특집에 출연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배우들이 그는 부럽지 않았을까.
“나는 명품 조연이 아니다. 그저 배우일 뿐이다.”
우문에 현답으로 대답하며 소탈하게 껄껄 웃는 그의 모습에선 인기에 대한 욕심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배우는 연기로 말한다’는 철학이 그의 뼛속 깊이 녹아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가 출연하는 드라마, 영화라면 ‘재미’를 장담할 수 있을 만큼 대중에게 신뢰를 쌓은 배우 김상호, 주연 욕심은 없을까.
“배우로서 최종 목표를 생각하면 ‘주연’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나는 지금까지 조연이었다. 하지만 ‘주연’은 내가 앞으로 거칠 수많은 배역 중 하나일 뿐이다. 내가 지나가야 하는 하나의 역(驛)이랄까. 내가 죽었을 때 우리 아이들이 ‘너는 참 좋은 아버지를 뒀구나. 내가 그 사람 연기를 보면서 행복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내 최종 목표다.”
김상호는 자신이 가진 배우로서의 강점이 ‘편안함’이라 했다. 꾸미지 않는 편안함, 낯설지 않은 믿음. 그가 지금껏 다채로운 캐릭터를 전혀 새로운 인물로 만들어내며 시청자와 관객을 울고 웃게 만들 수 있었던 힘은 그 편안함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옆집 아저씨처럼 푸근한 정이 느껴지는 배우 김상호를 브라운관에서, 스크린에서 빨리 다시 만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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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