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철의 behind] '복덩이' 니퍼트와 두산의 노력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1.09.14 08: 18

2번의 완투승과 총 161이닝 소화. 평균자책점 2위(2.74, 14일 현재). 여기에 성품도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예년의 팀 전력이었다면 이미 15승 이상을 무리없이 수확했을 투수입니다. 두산 베어스의 외국인 투수 더스틴 니퍼트(30)의 이야기입니다.
 
니퍼트는 지난 1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전에 선발 등판해 9이닝 동안 삼진 10개를 솎아내며 6피안타 2사사구 2실점(2자책)으로 시즌 12승(6패)째를 거뒀습니다. LG전에서만 무려 4승을 추가함과 동시에 국내 무대를 밟은 후 역대 최다인 투구수 132개를 기록했네요.

 
이닝이터로서 능력은 지난해 14승을 거둔 켈빈 히메네스(라쿠텐)보다 더욱 좋습니다. 니퍼트는 현재 161이닝을 소화하며 윤석민(KIA, 164⅓이닝), 벤자민 주키치(LG, 163이닝)에 이어 8개 구단 투수들 중 전체 3위에 해당합니다. 지난해 히메네스는 152이닝을 던졌습니다.
 
특히 두산이 예년보다 훨씬 과감한 투자와 노력으로 니퍼트를 손에 넣었음을 감안하면 니퍼트의 현재 활약상은 분명 값집니다. 지난 시즌 후 두산의 외국인 선수 인선 과정을 돌아보며 구단이 니퍼트에 쏟은 노력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 히메네스 일본행, 니퍼트의 논텐더
 
지난해 플레이오프서 2승 3패로 삼성에 무릎 꿇은 뒤 두산은 히메네스를 잔류시키는 데 집중했습니다. 포스트시즌 계투로 분전한 좌완 레스 왈론드는 분명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제구가 이따금씩 불안해 이닝 소화 능력이 떨어졌다는 점에서 김경문 전 감독의 좋은 점수를 받지는 못했네요.
 
그러나 히메네스는 라쿠텐, 한신, 오릭스 등 일본 구단들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선수였습니다. 특히 라쿠텐의 경우는 80년대 삼성에서 활약하기도 했던 이시야마 가즈히데(한국명 송일수) 편성부 매니저를 파견해 자주 히메네스의 경기를 직접 본 바 있네요. 당시 새 감독으로 취임한 호시노 센이치 감독 또한 히메네스의 싱킹 패스트볼을 높이 사며 '데려오고 싶다'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결국 두산은 히메네스를 눌러앉히는 데 실패했습니다. 만약 히메네스와 재계약을 체결했더라면 윈터리그서 2년 연속 점찍은 도미니카 출신 베테랑 우완 라몬 오티스(시카고 컵스)를 데려오려 했으나 검증된 1선발 카드가 떠나 두산도 많은 나이와 위험부담을 갖고 있던 오티스를 쉽게 데려오기 힘들었습니다. 올 시즌 전반기 뉴욕 양키스서 재기투를 선보인 베테랑 우완 바톨로 콜론 영입도 계획했으나 이 또한 히메네스 잔류를 염두에 두고 생각했던 카드입니다.
 
라쿠텐이 히메네스에게 2년 최대 400만 달러의 금액을 제시한 만큼 머니게임에서 두산이 라쿠텐을 이길 수는 없었네요. 그러나 두산은 히메네스의 일본행이 공식 확정되기 전 미국에서 건너 온 소식에 주목했습니다.
 
지난해 텍사스 레인저스서 선발-계투를 오갔던 니퍼트가 12월 4일자(한국 시간)로 논텐더로 방출된 것입니다. 장기계약으로 묶기는 아까워 마이너리그 계약을 계획했고 이는 타 구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때 애리조나의 선발 유망주였던 니퍼트는 이 때까지도 '메이저리그 보장 계약'을 바라고 있었구요.
 
 
 
▲ '투자'에 부응한 결과물, 니퍼트
 
12월 중 두산은 니퍼트에게 첫 번째 오퍼를 했으나 거절 의사가 날아왔습니다. 그와 함께 일본에서도 니퍼트를 향한 영입의 손길이 이어졌습니다. 일본 무대는 196cm의 제레미 파웰(전 긴테쓰-요미우리), 193cm의 콜비 루이스(전 히로시마-현 텍사스) 등 장신에서 직구-커브 조합이 위력적인 투수들이 재미를 본 무대입니다.
 
그만큼 일본 구단 물밑에서도 니퍼트에 대한 관심이 컸습니다. 특히 요미우리의 관심이 가장 컸던 것이 사실이구요. 그 와중에서도 두산이 니퍼트에 대한 오퍼를 끊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니퍼트 또한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밝혔습니다.
 
"만약 내가 아는 선수들이 '한국은 야구하기 나쁜 곳'이라고 말했더라면 지금 이 곳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전에 같이 뛰던 동료들도 '한국은 적어도 선수가 뛰기에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려 노력하는 곳이다.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더라. 그래서 이 곳에 오게 되었다".
 
요미우리의 경우 아직도 '순혈주의'의 성격이 짙어 검증된 외국인 선수가 아닌 이상 적응이 힘든 곳입니다. 반면 한국무대는 대체로 국내 선수들이 착하고 프런트의 지원도 나쁘지 않은 만큼 외국인 선수들의 적응이 수월한 편입니다. 특히 두산은 편의시설이 상대적으로 많은 서울 연고팀인 만큼 외국인 선수들의 평가가 좋았습니다.
 
"다들 잘 대해줘서 너무 고맙다. 가끔 의사소통이 불편하다는 점만 빼면 모든 것에 만족한다. 시즌 후 어디로 갈 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시즌이 끝날 때까지 나는 우리 팀의 목표에 더욱 가깝게 가기 위해 힘쓸 뿐이다". 니퍼트는 가끔씩 '우리 팀'이라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습니다.
 
물론 니퍼트가 시즌 후 어느 곳으로 갈 지는 알 수 없습니다. "메이저리그에 재도전한다면 모를까. 일본 무대나 한국 타 구단 이적은 생각지 않고 있다"라며 두산에 대한 애정을 이야기 한 니퍼트. 그러나 야구는 비즈니스입니다. 13일 경기서도 잠실에는 맷 스크루메터, 마쓰모토 유이치 일본 퍼시픽리그 팀 소프트뱅크 스카우트진이 자리해 니퍼트의 투구를 지켜봤습니다.
 
정 하나 만으로 선수를 눌러앉힐 결정을 하게 만드는 것. 그것도 외국인 선수를 그렇게 감화시키는 것은 분명 현대 야구서 어려운 일입니다. 올 시즌 후에도 두산은 '복덩이' 니퍼트를 눌러앉히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farinell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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