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최동원', 야구인들의 탄식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1.09.15 07: 02

"돌아가신 뒤에야 제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불세출의 대투수. 그러나 은퇴 이후 오랫동안이 아닌 그의 타계 직후 그 이야기가 쏟아지고 부각되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프로 8년 통산 103승 74패 26세이브 평균자책점 2.46의 기록을 남긴 뒤 프로 유망주 외에도 유소년 야구에 애정을 쏟다 세상을 등진 故 최동원의 영전을 바라보는 야구인들의 이야기가 더욱 가슴을 아프게 했다.

 
고인은 지난 14일 새벽 2시 2분 경 직장암 세포의 전이로 인해 향년 53세를 일기로 아까운 생을 마감했다. 선동렬 전 삼성 감독과 함께 한국 프로야구 최고 투수로 명성을 떨치던. 그러나 지도자로서 제 위력을 다하지 못한 야구인은 너무도 안타깝게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그를 사랑하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2001년과 2005~2006시즌 한화 투수코치, 2007시즌부터 2년 간 한화 2군 감독으로 재임한 뒤 이듬해 한국야구위원회(KBO) 경기감독관으로 일했던 고인. 그러나 1990년 삼성서 은퇴한 이후 그는 10여 년 간 현장의 코칭스태프가 아닌 변방의 야구인으로 재직해야 했다.
 
때로는 브라운관에 나타났고 의류 사업에도 진출하는 등 오랜 시간 동안 그는 야구 1차적 현장에서 떠나있었다. 현장 복귀 이전에도 유소년 야구 발전에 집중하는 등 프로 무대는 한동안 그를 외면했다.
 
그를 아는 야구인과 관계자들은 "스타 플레이어 출신임에도 자신을 스스로 드높이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너무도 착한 사람이었다. 나쁘게 보면 '우유부단' 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이라며 혀를 찼다. 1988년 선수협의회를 창설하려했던 그의 움직임이 '화합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달갑지 않은 이미지를 심어주고 말았다.
 
빈소에는 많은 야구인이 찾아와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그리고 그를 OB(두산의 전신) 코치 시절 상대 에이스로 만났던 이광환 전 히어로즈 감독을 비롯한 야구인들은 고인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대투수였다. 그것도 팀을 위해 헌신했다는 점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현역 시절 라이벌이던 선동렬 전 삼성 감독 또한 "라이벌이기 이전 내게 투수가 갖춰야 할 점을 가르쳐 준 선배"라며 겸양의 의사를 표했다. 1984년 한국시리즈서 혼자 롯데의 4승을 책임졌다는 점은 고인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요즘 투수들 중 누가 '단기전서 투구수를 지켜준다'라는 이야기 하에서라도 팀을 위해 한국시리즈 4승을 따낼 수 있을까. 지금 투수들은 아무도 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것이다. 고인은 정말 대단한 투수였다". 빈소를 찾은 모든 야구인들이 故 최동원의 역투를 회상하며 한 공통된 이야기다.
 
야구인들은 현역 시절 고인의 위력보다 그의 은퇴 후가 그리 풍요롭고 화려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더욱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선수협 태동의 움직임을 보였다가 트레이드되는 비운을 맞았던 고인은 결국 선수 생활 은퇴 후 변방에서 '잘 알려진 야구 선수'라는 꼬리표를 달고 방송에 출연했고 해설위원으로도 활동했으며 야심차게 사업 일선에 뛰어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그동안 자신의 직속 후배들은 가르치지 못했다.
 
한 야구인은 "왜 돌아가시고 나서 고인이 다시 평가를 받아야 하는가. 이 세태는 분명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라며 뼈 있는 한 마디를 던졌다. 나이는 같지만 1년 터울로 야구 선후배가 되었던 김경문 NC 다이노스 초대감독 또한 "동원 선배의 안타까운 별세가 남아있는 야구인에게 '무언가 잘못하지 않았는가'라는 숙제를 던져준 것 같다"라며 비통해했다.
 
지난 7일 타계한 장효조 삼성 2군 감독 또한 그러했고 1주일 시차로 생을 마감한 최동원 전 감독도 짧지 않은 야인의 길을 걸었다. 팬들은 '전성기의 최동원과 선동렬, 누가 더 우월했는가'라는 논제로 갑론을박을 펼쳤지만 현장은 고인을 발탁하지 않으며 '전설 속의 누군가'로 만들었다.
 
빈소를 찾은 김경문 NC 감독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야구계의 큰 별이 졌다. 최동원 선배의 별세는 우리 야구인에게도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반성점을 던져주는 것 같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현역 은퇴 후 야인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을 더 돌아보지 못했다는, 현역 감독으로서 회한 섞인 한 마디였다.
 
팬들이 사랑하는 야구가 더욱 발전하고 선수들이 기량을 절차탁마 하는 데 힘쓴다면 또 한 명. 그리고 또 한 명의 레전드 스타가 얼마든지 탄생할 수 있다. 그러나 팬들의 조망권에서 사라지면 관심도 빠르게 줄어드는 것이 세상 이치다. 빈소를 찾은 야구인들의 후회는 그저 단순한 말 한 마디에 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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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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