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칭스태프에 내가 요청한 것이다."
지난 14일 SK와 넥센이 맞붙은 문학구장. 3개의 홈런을 허용한 SK 선발 윤희상이 강판됐다. 그리고 등판한 투수는 '여왕벌' 정대현(33)이었다.
언더핸더 정대현은 SK의 마무리로 활약해왔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두자리수 세이브를 거뒀고 올해도 15세이브를 올리고 있다. 통산 100세이브에 2세이브만 남겨뒀다. 그런 만큼 정대현이 3회 등판한 것은 진풍경에 가까웠다. 실제로 정대현이 3회 등판한 것은 지난 2004년 이후 7년여만으로 알려졌다.

이날 정대현은 1⅓이닝 동안 3피안타 1볼넷 2탈삼진으로 1실점(비자책)한 후 이승호와 교체됐다. 총투구수는 39개. 선수 운용은 코칭스태프에 의한 것인 만큼 관여할 사항이 아니다. 그러나 SK 마운드 운용에 어떤 변화가 있는 것인지 궁금증을 낳은 것도 사실이었다. 엄정욱을 마무리로 돌린다고는 했지만 정대현과 함께 더블 스토퍼 체제로 꾸릴 것이라는 계획을 드러냈던 SK 코칭스태프였다.
일단 정대현이 궁금증을 풀어줬다. 정대현은 "내가 코칭스태프에 원해서 이뤄진 등판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요즘 투구폼이 좋지 않았는데 계속 이런 상태로 마운드에 올라가다 보니 타자 상대 운영이 뜻대로 안됐다"면서 "왼손 타자가 있으면 못나가고 대타 때문에 중간에 바뀌고 하다 보니 상대 타자를 상대하는 것이 짧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또 정대현은 "타자, 카운트별 응용이 되지 않아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데만 급급했다. 야구가 퇴보된 느낌이 들었다"면서 "뒤에만 있다 보니 한달 넘게 내 볼을 던지지 못했다. 또 왼손 타자를 상대하는 것이 편할 때도 있는데 그것을 보여줄 기회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특히 정대현은 "전날(13일) 피칭을 하면서 스스로 팔 스윙 각도를 생각한 것이 있었는데 투구수를 늘리면서 그것을 정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39개를 던지면서 스트라이크는 많이 없었다. 하지만 볼이 되더라도 원하는 코스에 볼을 넣을 수 있었다"면서 "점수를 주지 않아야 될 상황이었기에 어렵게 집중해서 컨트롤하다가 볼이 조금씩 빠지긴 했다"고 덧붙였다.
"경기 결과는 썩 좋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구위 면에서는 90%이상 만족스러웠다"는 정대현은 "그날 등판으로 자신감을 얻었다. 내 볼을 되찾고 싶었는데 잘된 것 같다. 엄정욱도 있고 하니 다시 뒤(마무리)로 가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이만수 SK 감독대행은 "요즘 별로 좋지 않았던 정대현이 김상진 코치에게 요청을 했다. 일찍 나가서 왼손 타자도 상대하고 볼도 30~40개 정도 던지고 싶다고 요청했다"면서 "경기전에 다른 경기와 마찬가지로 이미 선발 윤희상이 5회 전 내려올 때와 5회 이상 갈 때를 대비한 투수 운용을 짜놓았다. 정대현은 윤희상이 5회 전에 내려올 경우 다음 투수로 나가게 돼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한 경기를 버리는 한이 있어도 정대현을 살려야 했다. 결국은 정대현 같은 투수가 해줘야 하기 때문"이라며 "송은범, 정우람 등 다른 투수들도 코칭스태프와 상의를 거쳐 투입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대현을 계속 조기 투입하는 것에 대해 이 대행은 "정대현 같은 최고 마무리가 게임 감각을 위해 한 번 정도면 족하다"면서 "엄정욱과 함께 뒤를 책임질 것"이라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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