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깍두기 형님들과 포장마차 에피소드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1.09.18 07: 59

[OSEN=손남원의 연예산책]이름보다 얼굴로 익숙했던 배우들이 있다. 얼굴을 보고나서야 '아~ OO구나'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스타일이다. 주로 연기파 조연 배우 가운데 많다.
김정태도 KBS 2TV '1박2일' 출연으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기 전까지는 대표적인 '이름 보다 얼굴'형 배우였다. 장동건을 태우라고 지시했다가 거꾸로 무수한 칼침을 맞고 쓰러졌던 그 도루코(친구), 축구부 후배 정우성이 애지중지 아끼던 개를 잡아먹고 오리발을 내밀던 날건달 진묵(똥개), 원빈과 동네 조폭의 No 2를 다퉜던 쫄바지(우리형).
그리고 지방 소도시의 악질 조폭 '양기'('해바라기')까지 비열하고 거칠면서 때로는 야비하며 배신을 일삼었던 그의 필모그래피는 악연 전문 배우들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인다. 특히 '해바라기' 속 양기 역은 김정태 악연 연기의 결정판이었다.

영화를 보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김래원의 주먹에 비오는 날 먼지 날 때까지 두들겨맞았으면 하는 바람이 절로 생겼을 정도로. 그만큼 뼈속까지 물든 악한 연기를 제대로 해냈다. 문제는 바로 이 점이다. 아무도 그의 연기를 연기로 보지않는다는 사실.
지난 2006년 당시 김정태와 따로 만나 인터뷰를 했다. 최근 예능형 톱스타로 뜬 그가 "CF로 돈 좀 만졌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좋아한다"는 우스갯 소리를 곧잘 던지는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지금쯤 다시한번 악역 전문배우로 살아가던 그 시절의 김정태 얘기를 반추했다.
"건달 연기를 잘하면 사람들은 그 배우를 건달로 봅니다. 동성애자 연기를 기가 막히게 한 배우가 있다고 칩시다. 그는 동성애자로 손가락질 받는 게 아니고 '연기 잘하네' 칭찬을 받잖아요. 건달 역할을 자주 하다보니 라이프 스타일이나 성격, 자라온 배경 등이 다 그런 줄로 아는데 실제는 전혀 다릅니다."
실제로 김정태를 만나면 뽀얀 피부에 부드러운 눈빛, 영화속에서 보던 그와는 분명 다르다. 지적인 분위기를 강하게 풍긴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 나왔던 그 말론 브란도를 가장 좋아하는 배우로 꼽았다. "지금까지 싸움 한번 한 적이 없다"는 그는 A형이다. 사람 쉽게 사귀지 못하고 대신에 한번 친해지면 가진 걸 다 쏟아주는 식이다.
지금은 결혼해서 잘 살지만 '해바라기' 인터뷰 때만해도 30대 중반, 연기 경력 15년차에 미혼이었다. "데이트 상대를 구하기도, 데이트 하기도 쉽지않다. 악역 배우로 크다보니 이런 애로가 많다"고 했다.
그가 들려준 에피소드 한 가지. 언젠가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데 깍뚜기 머리의 건장한 청년들이 "어디 사십니까"라고 깍듯이 인사를 하더란다. 당시 살던 곳이 서울의 삼선 2동이라 그 곳 지명을 댔더니 이들은 계속 고개를 꺄우뚱 하다가 사라졌다. 나중에 포장마차 주인에게 들은 바로는 당시 동대문 일대의 이름난 조직에 속한 사람들이었고 '어디 사냐'는 말은 어느 조직에 속하느냐를 뜻했다는 것. 이렇듯 그의 주변에는 '건달'과 '배우'를 오해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고생도 많이 했다. '친구' 끝나고 근 1년여를 출연 섭외가 없어서 쉬다시피 했다. 닭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고 악역 전문이다보니 '해적, 디스코왕 되다' '똥개' 등 출연 때마다 잦은 부상과 과로로 입원한 게 한 두번이 아니다. "배우가 배역 때문에 살을 찌우고 빼는 게 무슨 자랑거리가 되겠냐"고 당당히 얘기하지만 매 영화 때마다 그 역할에 맞춰 체형을 바꾸는게 그의 프로 근성이다.
"원래 친해지면 남들을 잘 웃기는 재주도 있다. 그래서 건달로 캐스팅했던 감독들이 나중에는 코미디 등 다른 장르를 같이 해보자는 얘기를 종종 한다. 뿌린 씨앗이 있으니까 곧 열매를 맺지 않겠느냐"며 웃었고 "자신이 시나리오나 배역을 고를 여건이 못되서 그랬지만 내년부터는 다른 장르와 캐릭터를 연기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었다.
김정태는 결국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고 '방가 방가' 등 코미디 영화 주연을 통해 확실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고 '1박2일'로 화룡점정의 희열을 맛봤다. 그때나 지금이나 배우 김정태의 좌우명은 다른 배우들도 꼭 새겨둘 금과옥조였다. "배우는 자기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바로 작살납니다."
[엔터테인먼트 팀장] mcgwir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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