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생각엔 만족스러운 피칭이었는데…아쉽지만 제 승운이 거기까지인 걸요".
그는 이미 모든 걸 초월한 듯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도 욕심이 있고 희비가 있는 '사람'이었다.
넥센 히어로즈 우완 심수창(30)은 20일 친정팀 LG 트윈스를 상대로 한 첫 등판에서 잘 던지고도 팀이 0-2로 지면서 패전투수가 됐다. 심수창은 올 시즌 개인 한 경기 최다 탈삼진(7개)를 기록하며 7이닝 2실점(1자책) 퀄리티 스타트로 호투했지만 타선이 터지지 않는 바람에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경기 후 만난 심수창은 "친정팀 등판이라 사실 이기고 싶었는데 아쉽다"고 솔직한 마음을 드러냈다. 7월 31일 갑작스러운 이적 후 전 팀에 대해 원망도 아쉬움도 많았을 그였다. 그리고 이제는 새 팀에 완전히 적응해 인정받고 있는 만큼 새로워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의지도 엿보였다.
심수창은 자신의 투구 내용에 대해 "내 생각엔 만족스러운 피칭이었는데…"라고 그날 경기를 되돌아보며 "아쉽지만 내 승운이 거기까지인 것 같다"고 애써 웃어보였다. 그는 7개의 삼진을 잡은 것도 "LG 타자들이 내 피칭을 잘 알테니 그걸 역이용하자 싶어서 던진 것이 잘 됐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는 이어 "친정팀이라고 해서 부담되기 보다는 오히려 더 편했다"면서 "솔직히 며칠 전까지는 잘 던지고 싶다는 생각이 엄청 많았었는데, 송지만 선배가 '네가 이기려고 악한 마음을 가지면 더 못한다. 마음편히 해라'라고 조언해줘서 편히 던지려고 노력했다"고 이야기했다.

심수창은 차분히 이야기를 이어갔지만 퀄리티 스타트 이야기가 나오자 조금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심수창은 "올 시즌 목표는 퀄리티 스타트 10번이다. 더 높게 잡고 싶어도 운이 없는 것 같다. 오늘 9번째를 채웠으니 한 번만 더 해서 목표를 이루고 싶다"고 올 시즌 마지막까지 임하는 각오를 밝혔다. 지나치게 소박하다 싶지만 승수와 인연이 멀었던 그의 절박하고도 현실적인 목표였다.
그는 "솔직히 나는 퀄리티 스타트도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라고 속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넥센에 와서 9경기에 나와 6경기 퀄리티 스타트를 했다. 하지만 예전 팀에서는 선발로 10번인가를 나와 3번 밖에 퀄리티 스타트를 하지 못했다"고 일일이 숫자를 기억해가며 말했다.
심수창은 올 시즌 LG에서 17경기 중 선발로 10번 등판했다. 그러나 퀄리티 스타트는 단 3번. 대부분 그는 5회 1,2점을 내준 뒤 바로 강판됐고 공교롭게도 팀은 경기 후반 승리를 거두는 경우가 많았다. 그가 '불운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이유다. 그마저도 시즌 중반에는 잦은 우천 연기로 인해 구원 투수로 등판했다.
그는 예전의 조기 강판에 대해 "그때는 5회가 되면 1점만 줘도 내려보내니까 또 그럴까봐 매번 불안했다. 그래서 더 긴장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실점을 하거나 위기가 와도 감독님, 코치님들이 믿어주시니까 위기를 헤쳐나가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며 새 팀에 대한 고마움과 애정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심수창은 미소를 띠며 "이렇게 9번이나 퀄리티 스타트를 할 수 있는 저를 왜 보냈는지… 오늘 복수하고 싶었는데 그건 좀 아쉽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오늘도 그의 기록에는 1패가 추가됐다. 그가 2004년 입단 후 8시즌 동안 기록한 48패(29승) 중 1패지만 그에게는 특별히 가슴아픈 1패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승패를 내려놓고 퀄리티 스타트라는 또 다른 기록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마저도 쉽지 않았던 그의 굴곡진 야구 인생이 이제 조금씩 그만의 꽃을 피우며 만개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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