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가 워낙 잘 하잖아요. 전 제 위치인 백업에서 최선을 다 해야죠".
평소 롯데 양승호 감독은 경기에 자주 출전하지 못해 아쉬운 선수로 박종윤과 손용석을 꼽는다. 특히 박종윤에 대해서는 "다른 팀 가면 주전으로 뛸 수 있는 선수인데 (이)대호 때문에 출전을 못해서 안타깝다"고 말한다.
박종윤은 지난해 데뷔 후 가장 바쁘게 시즌을 보냈다. 110경기 출전, 307타수 79안타 타율 2할5푼7리에 8홈런 51타점으로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쳤다. 덕분에 올스타에 선정돼 데뷔 첫 올스타전 출전의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그러나 올 시즌은 104경기 139타수 39안타 타율 2할8푼1리 2홈런 27타점으로 경기에 나설 기회가 많이 줄었다.

까닭은 이대호의 포지션 변경. 양 감독은 3루 수비 강화를 위해 이대호를 3루에서 1루로 보냈고, 포지션이 1루로 한정된 박종윤은 자연히 선발 라인업에서 빠지는 날이 많아졌다. 출전 경기 수는 지난해와 비슷하지만, 주로 경기 막판 이대호의 체력 안배 차원에서 투입됐다. 결국 타석에 들어설 기회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20일 사직 SK전을 앞두고 박종윤을 만나 경기에 임하는 각오를 들었다. 박종윤은 통산 14개의 홈런포 가운데 SK를 상대로만 6개를 담장 바깥으로 날려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에 내심 좀 더 중요한 역할을 맡길 바랄 수도 있을 터. 그러나 그는 "현재 저는 (이)대호의 뒤를 받치는 백업이잖아요. 대호가 워낙 잘 하니 어쩔 수 없죠. 일단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다보면 좋은 기회가 오지 않을까요?"라고 말하며 장갑을 고쳐 끼고 그라운드로 나섰다.
그리고 박종윤이 말한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3-3으로 맞선 6회 롯데는 무사 만루의 기회를 맞았다. 마운드에 서 있는 투수는 SK 송은범. 박종윤은 내심 자신이 대타로 나설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송은범을 상대로 통산 11타수 4안타 타율 3할6푼4리에 2홈런으로 강했기 때문. 역시 양 감독은 박종윤을 대타로 선택했다.
송은범의 1구는 슬라이더. 박종윤이 좋아하는 낮은 코스로 꺾여 떨어졌지만 헛스윙. 배트를 고쳐 쥔 박종윤에게 또 다시 낮은 슬라이더가 들어왔다. 이번엔 놓치지 않았다. 박종윤이 힘껏 걷어올린 공은 외야로 날아갔고 사직 구장은 뜨거운 함성으로 가득찼다. 비록 공은 힘을 잃고 우익수에게 잡혔지만 3루 주자 이대호가 홈으로 들어오기엔 충분했다. 이날의 결승점이었다. 박종윤의 결승 희생플라이에 힘입어 롯데는 SK와의 3연전 첫 경기를 5-4, 한 점차 승리로 장식했다.
경기가 끝난 뒤 박종윤을 다시 만났다. 그는 "역시 제가 낮은 공을 좋아하는 걸 알아서 그런지 연달아 몸쪽 낮은 공이 들어오더라고요. 좋아하는 코스로 공이 와서 그냥 걷어 올렸는데 좋은 결과로 이어져 기분이 좋습니다"라고 답했다. 뒤이어 박종윤은 "내일이요? 일단 백업이니 마찬가지로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해야죠. 그럼 또 오늘같이 기회가 오지 않을까요"라고 답하고 웃으며 덕아웃을 빠져나갔다.
박종윤과 같이 자신의 자리를 묵묵하게 지키는 선수가 있기에 롯데가 더 강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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