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키치, '한국무대 10승' 3가지 비결
OSEN 박광민 기자
발행 2011.09.21 13: 11

LG 트윈스 외국인투수 벤자민 주키치(29, 좌완)가 한국프로야구 데뷔 첫 해에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하며 효자 용병으로 자리매김했다.
주키치는 2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1 롯데카드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전에 선발 등판해 8이닝 동안 삼진 5개를 곁들여 7피안타 4사사구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시즌 10승(6패)째를 달성했다. 평균자책점도 3.39로 견실한 수치다.
사실 주키치를 포함한 선발 투수들에게 10승은 당연한 의무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21일 현재 올 시즌 10승 이상을 거둔 투수는 16승으로 다승 1위를 달리고 있는 윤석민(25, KIA)을 비롯해 12명에 그치고 있다.

그렇다면 주키치가 한국무대 첫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주키치의 성공 비결은 크게 3가지로 꼽을 수 있다.
▲주키치만큼 크로스 스탠스는 없다
주키치가 한국무대에서 10승을 거둘 수 있었던 가장 큰 무기는 크로스 스탠스다. 보통 우완과 좌완 오버핸드 투수들의 경우 공을 던지면서 자유족을 밀고 나가는 스탠스가 일자가 되는 스트레이트 스탠스가 기본이다. 그러나 주키치는 양발이 교차해 크로스 스탠스로 공을 던진다.
<사진설명, 벤자민 주키치의 불펜 피칭 후 투구판 위 축 발인 왼발과 1m 정도 떨어져 11시 방향에 스트라이드를 한 자유족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주키치는 공을 던지는 동작에서 허리를 약간 틀어 축이 되는 왼발과 자유족 오른발의 위치가 일자가 돼 12시 방향이 아니라 오른발이 11시 방향에 떨어진다. 이렇게 던질 경우 큰 각도를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한국 투수들은 좀처럼 따라 하기 힘들다. 일단 크로스 스탠스는 하체가 길어야 한다. 여기에 공을 던지는 순간 모든 투수들이 허리와 엉덩이 회전을 하지만 크로스의 경우 그 각도가 더 커 허리에 무리가 가서 쉽지 않다.
실제로 한화 신인 유창식이 지난해 광주일고 3학년 때 크로스 스탠스로 공을 던졌다. 덕분에 슬라이더와 직구의 각도가 매우 예리했다. 그러나 유창식은 프로 입단 후 투구폼을 교정했다. 그는 "허리에 너무 무리가 와서 소화하기 힘든 폼이었다"고 설명했다.
최계훈 LG 투수 코치 역시 "현재 8개 구단을 살펴 봐도 주키치처럼 크로스 스탠스로 들어오는 투구폼을 갖고 있는 투수가 없다. 아마도 독특한 투구폼 때문에 상대 타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고 말했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 역시 "지금까지 한국프로야구에서 주키치만큼 크로스 스탠스가 되는 투수들은 없었던 것 같다. 여기에 주키치는 왼 팔이 옆에서 나오기 때문에 타자들이 느끼기에는 각도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고 대답했다.
주키치 역시 "나는 정통 투구폼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던졌다. 그래서 톰 하우스 투구 교본이나 이런 것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내 체형에 맞는다. 특히 크로스 스탠스는 투구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지만 이렇게 던질 경우 스트레이트 스탠스보다 더 큰 각도를 만들어 공을 던질 수 있다. 좌타자 몸에 직구를 던졌을 때 타자들은 몸에 맞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우타자 바깥쪽은 더 멀게 보일 것이다. 커브 역시 더 큰 각도로 휘어져 나가게 할 수 있어 내게 큰 장점인 것 같다"며 웃었다.
물론 크로스 스탠스가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주키치는 8월 13일 롯데전부터 9월 3일 롯데전까지 5경기에서 퀄리티 스타트(6이닝 이상 투구 3자책 이하)를 한 차례 밖에 하지 못했다. 무더위 속 체력이 떨어지면서 투구 밸런스에 문제가 생겼다. 크로스 스탠스를 유지할 때 중요한 허리의 힘이 떨어져 자유족인 오른발이 보통 때보다 더 벌어졌다. 이 때문에 제구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두 경기에서 조금씩 투구 밸런스를 찾았다.
▲주키치, 결정구가 무려 3가지
모 구단 전력 분석팀은 "한국에 온 외국인 투수들 같은 경우 커브, 슬라이더, 컷 패스트볼 중에서 한 개만 제대로 던져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즌 중 교체되어 들어온 SK 브라이언 고든은 커브를, 롯데 크리스 부첵은 컷 패스트볼을 잘 던진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주키치의 결정구는 몇 개일까. 주키치는 컷 패스트볼, 커브, 그리고 체인지업까지 3가지 구종을 상황에 따라서 결정구로 구사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주키치는 한국프로야구에서 가장 위력적인 커터를 던진다. 컷 패스트볼은 직구의 변형 구종으로 직구처럼 날아오다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좌타자 바깥쪽으로 살짝 휘어져 나가는 것을 말한다. 우타자에게는 몸쪽으로 파고 든다. 슬라이더와 같은 궤적이지만 꺾이는 정도가 매우 짧아 변화구라고 하는 대신 패스트볼의 일종으로 분류한다.
주키치 커터는 시즌 초 142km까지 나왔다. 직구 최고구속이 145km인 것과 비교하면 직구로 보여지지만 홈플레이트를 바로 앞에서 공의 궤적이 변하면서 범타 또는 삼진을 잡아낸다. 20일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602세이브를 거둔 뉴욕 양키스 마무리투수 마리아노 리베라도 '커터신'이라는 닉네임처럼 커터를 주무기로 최고의 마무리 투수가 됐다.
여기에 주키치는 커브의 각도와 구속도 매우 좋다. 주키치 커브는 110km 후반대에서 130km 초반까지 나온다. 각도도 매우 커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는데 효과적이다. 커브는 좌타자, 우타자를 가리지 않고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들어갈 때나 결정구로도 쓴다.
주키치의 체인지업은 LG 유니폼을 입고 장착한 신무기다. 주키치는 지난 11월 미국 플로리다 마무리캠프에 합류해 자신의 우상과도 같았던 메이저리그 명투수 프랭크 바이올라(51)로부터 체인지업을 전수받았다. 기존에 체인지업을 던지긴 했지만 그의 조언 덕분에 이제는 결정구가 됐다. 구속은 120km 후반대를 유지하면서 커터, 커브를 노리는 타자들에게 체인지업을 던져 범타를 유도한다.
▲영악한 두뇌피칭의 소유자
보통 투수들에게는 나쁜 습관이 있다. 특히 이 습관은 상대 전력 분석에게 읽혀 공을 던질 때 직구, 변화구를 구분하기도 한다. 상대팀은 주키치와 같은 에이스급 투수들의 나쁜 습관을 찾기 위해 수백 차례 비디오 카메라를 돌려본다. 중요한 것은 모든 투수들이 이러한 나쁜 습관이 있다는 것이다.
주키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를 역이용할 수 있는 명석한 두뇌까지 갖고 있었다. 모 구단 전력분석팀은 "주키치는 정말 머리가 잘 돌아간다. 분명히 직구를 던질 때, 변화구를 던질 때 나쁜 습관이 발견됐다. 그런데 경기 중에 이를 역이용하기까지 한다. 가끔은 영악하다는 생각도 들 정도"라며 혀를 내둘렀다.
물론 주키치도 보완할 점이 분명히 있다. 주키치는 20일 넥센전에서 자칫 잘못하면 10승이라는 성적표 대신 퇴장을 다할 수도 있었다. 이날 주심을 맡은 최규순 주심의 스트라이크존 판정에 몇 차례 불만을 나타냈다. 그리고 주의도 받았다.
주키치는 시즌 초 보크 판정에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상대 전력분석팀에도 잘 흥분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그만큼 승부욕이 뛰어나다는 뜻이기도 하다. 흥분만 조금 가라앉힌다며 내년 시즌 더욱더 무시무시한 투수가 될 수 있다.
주키치와 LG 구단 모두 재계약을 원하는 만큼 내년 시즌에도 LG 유니폼을 입고 잠실 마운드에 설 것으로 보인다.
agass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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