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같은 외모에 아담한 체구. 하얀 피부에 마냥 어려보이는 모습 뒤로 수 만 가지 가면을 숨기고 있을 것 같은 배우. 신예 한예리가 송새벽과 함께 출연하는 독립영화 ‘평범한 날들’로 관객들과 만날 채비를 하고 있다.
왠지 모르게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그의 외모는 보는 이를 끌어들이는 마성의 힘을 지녔다. 누구나 인정하는 김태희처럼 인형같은 외모는 아니지만 자기만의 색깔과 매력으로 대중을 휩쓰는 공효진의 이미지와 묘하게 겹친다.
‘평범한 날들’은 권태와 이별의 아픔에 허덕이는 세 인물의 평범한 일상을 담은 독립영화. 극 중 한예리는 전 남자친구와의 이별, 죽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 낙태 등 젊은 여성이 겪는 상실의 고통을 한 편의 모노드라마처럼 그렸다.

누구나 공감할 만한하지만 다소 불편하기도 한 내용을 한예리는 스크린 위에 담담하게 그려낸다. 관객들이 스크린에 완전히 빠져들 수 있는 건 신인이면서도 가공할 만한 내공을 가진 그의 연기력이 크게 한 몫 했기 때문이다.
‘평범한 날들’의 개봉을 앞두고 한예리를 인터뷰했다.
“개봉은 아예 포기했었다.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개봉도 하고, 관객들과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하다. ‘평범한 날들’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상처 입은 사람들의 모습을 잘 보듬어 표현해 내려 했다는 부분에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남자친구, 부모와의 이별, 혼전 중절수술 등 제 또래 여성들이 겪을 수 있는 일들을 나열해 놓았다.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이 많이 봤으면 한다.”

순수함을 간직한 외모에 카리스마 있고 당찬 연기로 일찌감치 독립영화계에서 스타로 인정받은 한예리는 하지원, 배두나 주연의 영화 ‘코리아’에 캐스팅 되며 상업영화 데뷔도 앞두고 있다.
영화 ‘코리아’는 1991년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단일팀을 구성해 중국을 꺽은 복식조 이야기를 다룬 감동 실화극. 극 중 한예리는 ‘현정화’ 역의 하지원과 호흡을 맞추는 북한 선수 ‘유순복’ 역할을 맡아 남과 북의 이념을 넘어서 스포츠로 하나되는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감독님께서 예전 드라마 ‘로드 넘버 원’의 간호사 역을 했던 사진을 보시고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물어 오셨다. 내가 맡은 캐릭터는 이름처럼 순하고 복스러운 인물이다. 애착이 갔다. 잘하고 싶었고 ‘순복’이란 캐릭터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촬영 3개월 전부터 북한 사투리와 탁구 훈련을 병행하며 촬영 준비를 했다.”
독립영화계의 스타로 자리매김했지만 여전히 그를 알아보는 대중은 많지 않다. 첫 상업영화, 그것도 대한민국 대표 여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품을 촬영하면서 부담이 되진 않았을까.
“부담은 없었다. 나는 신인이라 그런 것까지 계산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웃음) 편하게 촬영했다. 순복이란 캐릭터를 좋아했고 나 혼자 목표량을 정해 훈련하면서 촬영을 준비했다. 하지원, 배두나 선배님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배우고 느낀 점도 많다. 오랜 기간 촬영해서 많이 친해졌고 촬영이 없을 땐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니며 놀기도 했다. 촬영장에선 막내라 다들 예뻐해주셔서 즐겁게 촬영했다.”

영화 ‘파주’, ‘귀’,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를 비롯해 드라마 ‘로드 넘버 원’에 출연하면서 자신만의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온 한예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했지만 4학년 때 처음 맛본 영화의 매력에 푹 빠져 연기자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작품 활동을 하는 게 귀한 보약을 먹는 것처럼 힘을 얻는 원천이라 말하는 한예리는 천상 배우의 기질을 타고난 재목이었다.
“연기를 시작한 지 5년이 됐지만 아직 많은 분들이 나를 모른다. 그래서 늘 작품을 할 땐 새롭게 시작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니, 아직 시작도 안 한 것 같다. 지금은 차근차근히 가는 느낌이다. 달린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앞으로 달리게 될 일이 있다면...행복할 것 같다.(웃음)”
송새벽, 한예리, 이주승이 각기 다른 에피소드를 그린 독립영화 ‘평범한 날들’(이난 감독)은 29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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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