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지금은 잃을 게 없다는 생각이에요. 그러면서 도리어 편해진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격렬한 운동을 하다가 찾아오는 '사점(死點)'. 그러나 이를 잘 견뎌내면 '세컨드 윈드(Second wind)'가 찾아온다. 자극에 잘 단련되었기 때문에 한계를 극복하면 몸이 고비를 넘어 편해지는 느낌이 찾아온다. '대수리게스' 이대수(30. 한화 이글스)에게 2011년 가을은 그 '세컨드 윈드' 시점과도 같다.

올 시즌 이대수는 113경기에 출장해 3할5리 8홈런 48타점 10실책(22일 현재)을 기록하며 데뷔 이래 가장 뛰어난 성적을 올리고 있다. 팀 순위가 6위에 그친 것이 아쉬울 수 있지만 시즌 전 최약체로 평가받았던 한화의 선전을 이끄는 주역 중 한 명이 바로 이대수임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1999년 말 군산상고 졸업을 앞두고 쌍방울 신고선수로 입단했으나 팀의 공중분해로 자리를 잃었던 이대수는 2001년 SK 신고선수로 다시 프로야구를 노크해 데뷔한 뒤 두 번의 이적을 거치며 세 개 팀에서 주전 유격수 자리를 꿰찼던 입지전적 선수다. 175cm 70kg로 체구는 왜소한 편이지만 엄청난 훈련량과 근성으로 대표된다.
김상수(삼성), 김선빈(KIA), 강정호(넥센) 등 젊은 실력파 유격수들이 출중한 실력을 보이고 있으나 이대수의 현재 성적표는 유격수 골든글러브 부문에 명함을 놓기 충분하다. 타율 3할 대를 자랑하는 데다 수비력에 대한 1차 스탯인 실책도 10개로 안정적인 편이다. 비시즌 웨이트트레이닝에 힘을 쏟으며 체력을 키운 것이 일단 이대수의 호성적에 한 몫 했다.
"웨이트트레이닝을 꾸준히 했기 때문인지 지금도 체력적으로는 문제가 없습니다. 3할 유격수요?(웃음) 사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인데 3할 타율을 기록하고 있으니 감개무량하지요".
이미 포스트시즌 진출이 산술적으로도 좌절된 한화. 그러나 남은 10경기 동안 손을 놓고 시즌을 모두 포기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즌 전 "고춧가루를 팍팍 뿌리는 한화의 근성을 기대해달라"라며 각오를 불태웠던 이대수도 시즌 끝까지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골든글러브라는 꿈도 점점 가시화되는 만큼 이대수도 기운을 부쩍 끌어올리고 있다.
"정말 본의 아니게 이런 성적까지 올리니. 솔직히 골든글러브 생각이 안 난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요?(웃음) 앞으로 남은 경기서 마지막까지 집중하면서 뛰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골든글러브 경쟁자들에 대한 존중도 잊지 않은 이대수다. 지난해 골든글러버인 강정호는 물론이고 김상수, 김선빈 등 차세대 대표 유격수를 향해 성장 중인 유망주들은 이대수에게 좋은 자극제와 같다.
"모두 정말 좋은 선수들이에요. 상수와 선빈이도 정말 출중한 기량을 갖춘 유격수들이잖아요. 상수 같은 경우는 실책 수가 많다고 해도 실책 갯수 만으로 수비력을 온전히 판별할 수는 없습니다. 볼 때마다 정말 수비력이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상수나 선빈이나 제가 갖지 못한 출중한 스피드를 지녀서 확실한 도루 능력도 갖추고 있으니까. 저야 뭐 요즘 도루 갯수가 예년보다 늘었다고 해도 발 빠르기를 앞세운다기보다 타이밍을 빼앗아 허를 찌르는 정도입니다".(웃음)
골든글러브라는 상에 대한 이대수의 마음은 오히려 편안하다. 데뷔 이후 10년 만에 가장 영예가 가까이 다가온 순간. 그러나 이대수는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라며 무욕의 입장을 밝혔다.
"남은 경기들에 더욱 집중하는 게 우선이에요. 내가 생각지 못했던 성적을 올리고 있는 건 분명하니까. 사실 최근까지도 부담이 컸는데 어느 지점을 지나면서부터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어요. 내년에 제대로 도전하겠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올해 이 정도 성적을 거둘 줄은 몰랐습니다. '난 잃을 게 없다'. 이게 제 지금 마음가짐입니다".
이전까지의 이대수는 여름 고비를 넘기지 못하며 급격한 페이스 저하를 보여준 뒤 가을 바람이 불어올 때 다시 상승세를 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는 한여름으로 대표되는 8월 4할4푼1리 1홈런 10타점 불방망이를 보여준 뒤 9월에도 4할3푼4리의 고감도 타격을 선보이고 있다.
2할 대 초중반이던 타율이 순식간에 3할 대까지 치솟은 이유다. 마라톤과도 비유되는 페넌트레이스서 이대수는 많은 이가 사점을 느낄 8월 찾아온 세컨드 윈드 바람을 탔다. 체력적-정신적 부담이라는 사점을 욕심없는 마음으로 넘어선 이대수다.
올 시즌이 끝난 후 이대수는 둘째 아이를 품에 안을 예정이다. 첫 아들 시헌군에 이어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될 이대수의 눈빛은 반드시 골든글러브를 따내겠다는 의욕이 아닌 "그저 부담없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각오와 함께 활활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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