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순 “'의뢰인' 촬영中 이런 일도...” [인터뷰]
OSEN 이명주 기자
발행 2011.09.23 15: 14

배우 박희순 하면 떠오르는 수식어가 하나 있다. 바로 ‘오지 전문 배우’다.
동티모르를 배경으로 한 ‘맨발의 꿈’, 서호주 사막에서 촬영한 ‘10억’ 등 그는 세계 각국의 오지와 유독 인연이 깊다. ‘맨발의 꿈’ 촬영 당시에는 40도를 웃도는 폭염 속 머리카락이 샛노랗게 탈색 되고 피부가 벗겨지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이랬던 그의 처지가 확 바뀌었다. 신작 ‘의뢰인’을 통해 냉혈 검사로 변신, 넓고 쾌적한 법정 세트장에서 연기하게 된 것.

블랙 정장 차림에 잘 다듬어진 헤어스타일, 상대를 압도하는 눈빛 등으로 극중 카리스마 넘치는 검사 안민호를 표현한 박희순은 지금껏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인물이 된 모습. 과거 연기만 잘하는 배우란 고정관념이 있었다면 이번 ‘의뢰인’에서는 소위 ‘수트빨’을 제대로 살렸다.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의뢰인’으로 오랜만에 관객을 찾는 그를 만났다. 극중 안민호의 딱딱한 정장 차림과는 다르게 멋스러운 니트로 분위기 있는 스타일을 연출했다.
국내 최초의 법정 스릴러, 그 자체로 의미 있어
영화 ‘의뢰인’은 시체가 사라진 살인 사건을 두고 검사와 변호사, 용의자가 팽팽한 긴장 관계를 형성하며 극을 이끌어가는 법정 스릴러물이다. 그간 할리우드 영화 및 미국 드라마에서 자주 다뤄졌던 소재이지만 한국에선 처음 시도하는 장르다.
“최초의 법정 영화였기에 새로운 시도들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잘 녹아낸 것 같아요. 자칫 길을 잃을 수도 있겠다고 걱정했는데 (완성본을 보니) 스피디하게 잘 만들어져 기쁩니다. 중간 중간 하정우가 코미디적인 것도 많이 넣어서 더욱 재미있어졌습니다.”
극중 검사 안민호 역은 캐릭터의 전환이 극적인 것이 특징이다. 부패 검사에서 정의감 넘치는 인물로 180도 달라진다. 후반부에는 깰 수 없는 강직함마저 느껴진다. 복합적인 인물을 그리기가 쉽지는 않았을 터. 
“실생활과 법정에서 보여 지는 게 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일상에서의 안민호는 외로움과 고독, 이런 걸 이겨내기 위해 잔잔한 모습을 보여주고 법정에선 파워풀하고 냉철하게 보이도록 나름 차이를 뒀어요. 아버지에 인정받지 못하는 트라우마, 친구에 대한 질투 표현해야 했고 자기 실력으로 재판에서 이기고 싶은데 검찰에서의 압박으로 힘들어하는 감정 등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연기생활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하게 된 검사 역할. 이를 위해 박희순은 수많은 준비 작업을 했다. 그 중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던 건 한 흑백 영화에서였다. 
“도서, 다큐멘터리, 영화 등 참고할 수 있는 자료들은 거의 다 봤어요. 공부 많이 했습니다. 재판 과정 지켜보면서 힌트 많이 얻었는데 너무 리얼하게 가면 재미없을 것 같아 현실과 할리우드 영화 속 우리 실정에 맞는 요소들을 혼합해서 준비했어요. 대사 양이 너무 많고 또 어려운 법정 용어라 두 달간 입에 익혔어요. 특히 ‘검찰 측의 증인’이란 영화에서 단서를 많이 얻었는데 연극 무대 같이 깔끔하게 법정 드라마 만들었더라고요. 이걸 토대로 갔으면 했습니다.”
연극배우 출신인 그에게 실제 재판 과정은 마치 검사와 변호사가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한 편의 연극 같았다. 너무나 잘 짜인 극본대로 재판이 진행되는 가운데 검사, 변호사가 행하는 배심원들을 향한 감정 자극 부분이 특히 그러했다.
“(‘의뢰인’을 준비하다가) 배심제 참관했는데 진짜 검사와 변호사의 연극 한 편을 본 것 같았어요. 배심원들에게 감정적인 부분으로도 많이 다가가고 반전도 있고 용의자 감정을 자극하게 하는 것도 있더라고요. 연극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훌륭한 줄거리를 가진 작품이지만 박희순은 처음 ‘의뢰인’ 제의를 받았을 때만 해도 고사했다. 그러던 중 하정우가 변호사 역에 캐스팅 됐고, 이 같은 제의가 들어온 지 일 년여 만에 그 역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당시 기다리는 작품이 있었어요. 기다리는 과정에서 촬영 들어 갔겠거니 했는데 다시 왔어요. 잘 짜인 시나리오임에는 틀림없지만 변호사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내용이어서 보여줄 수 있는 게 작지 않나 했습니다. 또 전형적인 캐릭터가 되기 쉬운 위험요소 있어서, 단서 부족해 자신 없었어요. 다시 대본 보니까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 생겼고, 소소한 것들도 생겨났더군요. 또 하정우가 있으니까.(웃음)”
하정우와의 연기 대결? 난 버팀목 역할이야
이번 영화에서 그는 하정우와 대립되는 입장에 서서 물러설 수 없는 한판 대결을 벌인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접전의 리듬과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빠른 전개가 법정 스릴러물의 핵심인 만큼 이들 연기가 주는 시소 같은 균형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연기 대결’처럼 비쳐지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을까.
“처음부터 그런 생각 했었다면 아예 하지 않았을 겁니다. 어차피 변호사 중심 이야기여서 조연의 입장에서 바라보자 했습니다. 튀는 것보다 묵직하게 버팀목 역할을 하자 했지요. 이런 것 감안하고 시작했습니다. 다만 아쉬운 건 스스로 승부를 걸었던 법정신 있는데 큰 부분 두 개가 날아가는 바람에 아예 없어졌어요.”
‘의뢰인’ 촬영 중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에 대해 질문했다. 생각지 못한 재미있는 답변이 들려왔다. 극중 용의자로 나온 장혁으로서는 당황스러울 그가 전한 에피소드 하나. 
“하정우와 저는 어려운 법정 용어 탓에 법정신이 있으면 쉬지 않고 대사 연습을 했어요. 근데 무표정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 장혁 역시 뭔가를 줄줄 외우면서 열심히 연습하더라고요. 뭔가 해서 봤더니 자신이 주연인 SBS 드라마 ‘마이더스’ 대사더라고요.”
올곧이 배우의 길을 걷던 그에게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은 ‘세븐데이즈’다. 박희순은 껄렁하지만 의리 있는 형사 성열 역을 맡아 관객과 평단의 지지를 받으며 각종 영화제의 조연상을 휩쓸었다.
“‘세븐데이즈’는 제게 특별한 의미입니다. 이 영화를 통해 선택의 폭이 늘었거든요. 기존엔 주로 쎄고 강한 이미지의 역할만 들어왔는데 유머가 가미된 캐릭터도 들어오기 시작한 거 같아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박희순은 동료 배우 박예진과 아름다운 사랑을 키워가고 있다. 선후배 관계에서 올 초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나이가 있는 만큼 결혼 계획에 대해 물었다.
“30대 때는 (결혼이) 간절했던 것 같아요. 근데 40대가 되고 보니 무덤덤해졌어요. 지금은 이왕 늦은 거 서두르지 말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작품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할리우드 배우 조니 뎁을 닮고 싶은 인물로 꼽은 그는 마지막으로 ‘변화무쌍한 배우’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좋은 배우로 남고 싶어요. 참 어려운 얘기인데 제 생각엔 관객들에게 식상하지 않고 질리지 않는 배우가 좋은 배우 아닌가 합니다.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거듭나야 하고요. 그게 좋은 배우가 되는 길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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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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