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아픈 실수였다. 하지만 한화 선수들은 그의 등을 토닥였다.
한화 외야수 김준호(27)에게 지난 23일 대전 두산전은 잊을 수 없는 악몽 같은 날이었다. 한화가 5-7로 추격한 9회말 2사 1·2루에서 볼넷으로 출루한 카림 가르시아를 대신해 대주자로 나온 김준호는 그러나 후속 타자 이대수의 좌익선상 2루타 때 1루에서 2~3루를 지나 홈으로 쇄도하는 과정에서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지고 말았다.

2루 주자 장성호가 여유있게 홈을 밟으며 1점차가 됐고, 김준호만 홈을 밟으면 동점이 될 수 있는 순간. 그러나 3루에서 홈까지 절반이 더 지난 지점에서 철퍼덕 넘어진 그는 다시 일어서 홈을 향해 내딛었으나 이미 공이 홈에 먼저 들어온 뒤였다. 그의 주루사로 경기는 7-6 두산의 승리로 끝났다. 김준호는 한동안 제자리에 엎드린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넘어지지 않고 정상적으로 쇄도했다면 무조건 세이프되는 타이밍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뼈아팠다.
효천고-고려대를 졸업하고 지난 2003년 2차 9번 전체 67순위로 LG에 지명된 오른손 외야수 김준호는 2008년·2010년 1군 50경기에서 타율 2할4푼4리 1홈런 10타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오른쪽 어깨 부상으로 지난 5월20일 LG에서 웨이버공시된 뒤 전년도 최하위 한화의 부름을 받아 프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어깨 재활을 마친 8월 중순부터 2군 경기에 투입된 김준호는 지난 17일 문학 SK전부터 1군 엔트리에 등록됐다.
한대화 감독도 그를 주목하고 있다. 타격시 임팩트 요령을 키울 수 있는 샌드백 치는 훈련을 직접 지시하고 바로 곁에서 지켜볼 정도로 관심을 갖고 있다. 한 감독은 "어깨가 좋지 않지만 기본적인 하드웨어가 좋다. 아직 실전에서 투수의 볼에 대한 타이밍이 맞지 않은데 경기에 많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남은 시즌에는 큰 활약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스프링캠프를 거쳐 몸을 만들고 경기 감각을 키운다면 한 번쯤 기대해 볼만하다는 뉘앙스였다.
23일 두산전에서 김준호는 출장 기회를 잡지 못하다 9회말 가르시아의 볼넷과 함께 대주자로 나왔다. 지난해 2군에서 도루 9개를 기록한 그는 기본 주력을 갖춘 선수였고 경기감각을 키우길 바라는 한 감독의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이대수의 2루타 때 2루를 지나 3루를 향하는 과정에서부터 다리 근육이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고 3루 베이스를 찍고 홈으로 쇄도하는 과정에서 다리가 버티질 못했다. 힘이 풀려 넘어졌고 그 사이 두산의 중계플레이를 통해 공이 먼저 홈을 향했다. 왼손을 홈 베이스로 향해 뻗었지만 이미 경기가 끝난 뒤였다.
지난해 9월14일 광주 KIA전에서 두산 외야수 유재웅도 비슷한 실수를 저질렀다. 2-3으로 뒤진 9회초 2사 1·2루에서 2루 주자로 있던 유재웅은 민병헌의 우전 안타 때 홈으로 들어오다 그만 오른쪽 발목 통증을 느끼며 제대로 된 주루 플레이를 하지 못한 채 홈에서 태그아웃돼 동점 찬스를 무산시켰다. 다행히 이날 김준호는 큰 부상이 아니었고, 몸에도 큰 이상이 없었다. 다만 그동안 어깨 재활에 많은 시간을 쏟는 바람에 장시간 러닝 훈련이 부족했다고 한다.
눈앞에서 동점 찬스를 놓친 한화로서는 너무나도 아쉬운 한판이었다. 그러나 스스로 동점 찬스를 무산시킨 김준호 본인 만큼 괴로운 사람도 없다. 이날 경기 후 고개를 숙이고 터벅터벅 라커룸으로 들어온 김준호를 향해 고참선수들이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 최고참 강동우는 "최선을 다한 것이니 괜찮다"며 김준호를 감싸안았다. 뼈아픈 실수로 악몽같은 하루를 보냈지만, 동시에 김준호로서는 새 팀에서 동료애를 느낄 수 있는 하루였다. 그들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경기장에 남아 타격 훈련을 하며 더 나은 내일을 다짐했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물은 엎질러졌다.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다. 이날 교훈을 거울 삼아 앞으로 더 힘차게 날아오르는 게 김준호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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