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찾아' 야구 연수 온 파키스탄 '캡틴' 이사눌라
OSEN 박광민 기자
발행 2011.09.24 10: 40

지난해 11월 16일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 한국-파키스탄전에서는 두 가지 흥미거리가 있었다. 먼저 한국이 파키스탄을 17-0 5회 콜드 게임으로 물리쳤다는 점. 그리고 한국을 상대로 최고구속 151km 강속구를 뿌린 파키스탄 우완투수의 깜짝 등장이었다.
한국인 코치에게 한달 동안 지도를 받고 아시안 게임에 출장해 한국을 상대로 무한한 잠재력을 보인 파키스탄 야구대표팀 '주장' 이사눌라(25, 우완투수)가 최근 한국을 방문해 야구 연수를 받고 있어 화제다.
이사눌라의 한국행은 지난 5일 '파키스탄투데이'에 "파키스칸 야구 주장 이사눌라가 한국프로야구팀인 LG 트윈스에 2개월 동안 야구 연수를 떠났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알려졌다. 이 소식은 파키스탄 뿐 아니라 'AP 통신'에도 보도되면서 LG 트윈스의 야구 선행이 전세계에 소개됐다.

OSEN은 23일 오전 구리 LG챔피언스파크에서 이사눌라를 만났다. 파키스탄 국가대표 유니폼 대신 LG 연습복을 입고 오전 훈련을 마친 그는 "지난해 아시안게임 후 한국과 파키스탄야구협회의 도움으로 LG에서 연수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따 세계 최강인 한국에 와서 야구를 배울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기회를 준 한국과 LG 구단에 감사하다"며 마냥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파키스탄 브레왈라 출신인 이사눌라는 9형제 가운데 여섯째로 아직 미혼이다. 결혼도 모르고 야구에 미쳐있는 청년이다. 지난 2007년 파키스탄 군에 입대한 이사눌라는 동료들이 야구를 하는 것을 보고 야구 선수가 됐다. "그 전까지 크리켓에서 볼을 던지는 볼러를 했다. 그런데 야구가 재미있어 보여서 야구를 시작했다"고 말한 그는 유난히 강한 어깨를 타고난 덕분에 20살 때 처음으로 야구공을 잡고, 야구를 배운지 4년만에 파키스탄 야구대표팀 주장을 맡았다.
사실 서남아시아 국가 파키스탄은 야구의 변방이다. 국민 대부분은 크리켓을 즐긴다. 크리켓과 비슷한 야구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다. 야구라고 말하면 농구인줄 안다. 그래서 슛하는 폼 대신 배트를 휘두르는 동작을 해야 사람들이 겨우 이해한다. 이해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파키스탄에 군인 야구 선수만 무려 1만 명이 넘는다. 이사눌라는 "인구가 1억 6000명이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 아시안게임 후 파키스탄에도 야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사눌라는 아시안게임 후 파키스탄에 돌아가자 거리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겼다는데 놀랐다. 어린이들 사이에서는 조금씩 야구를 알고 인기도 상승 중이다.
이사눌라는 한국과 조금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그는 황동훈 아시아야구연맹 인스트럭터를 만나면서 한국과 인연이 시작됐다. 파키스탄은 야구 도구가 부족하다. 특별히 야구를 지도해 줄 지도자도 마땅치 않다. 그러나 그는 2010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파키스탄 내에서 열린 야구대회에 출전해 맹활약하며 국가대표가 됐다. 이후 황동훈 인스트럭터의 한 달간 지도 덕분에 아시안게임에서 위력적인 공을 뿌릴 수 있었다.
아시안게임 당시 이사눌라는 한국과 경기 때 3회초 팀의 세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3이닝 동안 24타자를 맞아 8피안타 5사사구 10실점(6자책)을 기록했다. 이사눌라는 3회 1실점 후 4회에는 볼넷만 2개 내주고 무실점으로 막았다. 특히 직구 최고 구속이 151km까지 나왔고 슬라이더와 커브까지도 구사하며 30km 이상의 구속차를 선보였다. 그러나 5회 대거 9실점하며 파키스탄의 5회 콜드게임 패를 막지 못했다. 야수들의 실수만 아니었다면 5회에도 대량 실점은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당시 이사눌라를 상대로 적시타를 친 '타격기계' 김현수(23, 두산)은 1루에 나가 이사눌라의 공이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뿐이 아니다. 당시 현장에 있던 미국프로야구(MLB)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아시아 담당 스카우트인 로저(35)는 이사눌라에 대해 "처음 봤는데 매우 빠른 볼을 던졌다. 슬라이더와 커브도 좋았다. 다만 나이가 18살이 아니라 조금 많아 스카우트 하기에 무리가 있다"며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그는 "내년부터 파키스탄에도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사눌라는 1년 전 기억을 떠올리며 "한국은 최고의 팀이었다. 그래서 한국과 경기를 한다는 것 만으로도 내게는 큰 기쁨이자 행복이었다. 투수들의 공을 던지는 동작, 타자들이 치는 모든 것을 다 배우고 싶었다. 경기 내내 유심히 지켜봤다"고 추억했다. 아시안게임 때 이사눌라는 야구화가 아닌 보통 운동화를 신고 마운드에서 공을 던졌다. 장비가 없었기에 그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지금 이사눌라는 한국에 야구 유니폼에 스파이크까지 신고 제법 야구선수다운 모습으로 LG 2군 캠프에 합류해 2달 과정으로 야구를 배우고 있다. LG 2군 숙소에 묵고 있는 그는 아침 일찍 기상해 동료 선수들과 함께 야구장에서 스트레칭을 시작으로 야구를 배운다.
특히 이날 최원호 재활 코치가 상체와 하체 투구 밸런스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자 두 귀를 쫑긋 세워 집중했다. 이사눌라는 "한국에 와서 투구 밸런스를 배운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 팔로만 던지는 것이 아니라 하체 중심 이동과 힘을 모으는 동작들이 생소했다. 그러나 최원호 재활 코치의 도움을 받아 많은 지도를 받고 있다. 아직도 어색함이 있지만 매일 매일이 즐겁다"며 대답했다. 이사눌라는 직구,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을 구사한다. 투심 패스트볼은 한국에 와서 배웠다. 그러나 그는 다양한 구종보다도 공을 던지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안정된 폼을 익히고 싶어한다.
현재 파키스탄 야구대표팀 주장인 그는 군인팀에서도 주장과 감독 역할까지도 겸하고 있다. 11월이면 다시 파키스탄에 돌아갈 이사눌라는 한국에서 배운 야구 기술들을 파키스탄에 전할 계획이다. 그는 "모든 것이 새롭고 즐겁고 행복하다. 야구 배워서 파키스탄에 돌아가 동료 선수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다. 조금이나마 파키스탄 야구 실력이 높아졌으면 좋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2주 가량 지난 한국 생활도 대만족이다. 그는 "사실 처음 파키스탄을 떠나 한국에 올 때 어머니께서 걱정이 많으셨다. 그런데 한국에서 삶은 매우 좋다. 특히 매운탕이 가장 맛있다. 쌀도 맛있다"며 한국음식에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주에는 잠실구장을 찾아 LG-두산전을 관전했다. 2만명이 넘게 운집한 경기장에서 뜨거운 응원, 여기서 몸을 사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양팀 선수들을 보며 이사눌라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특히 그는 "경기도 재미있었지만 경기 중간에 키스타임에 깜짝 놀랐다. 파키스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웃었다.
이사눌라의 통역을 맡은 말라크 룩살(40)은 "이사눌라는 야구를 통해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는 사실에 너무 행복해하고 있다. 한국과 LG에 감사해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이사눌라는 꿈이 있었다. 소박한 꿈이 아니라 파키스탄 야구 선수를 대표한 큰 꿈이었다. 이사눌라는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 프로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 지난주 잠실구장에 가서 LG-두산전을 지켜봤다. 많은 관중들 앞에서 뛰는 선수들이 행복해 보였다. 나도 이곳에서 공을 던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 프로선수가 되고 싶다"며 웃었다.
지난해 아시안게임 당시 한국대표팀 주장을 맡았던 봉중근은 구리에서 이사눌라를 다시 만난 것에 놀라워했다. 봉중근은 "아시안게임 때 봤던 친구를 여기서 만나 신기하다. 이사눌라는 좋은 재능을 가진 선수다. 짧은 시간이지만 많이 배워가서 파키스탄 야구 발전에 영향을 미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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