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선발진 주축으로 활약해야 하는 만큼 단순히 눈 앞의 다승왕 타이틀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 시즌 비로소 수준급 국내 우완 선발의 성적을 올리고 있는 김선우(34. 두산 베어스)의 15승은 선수 뿐만 아닌 팀에도 또다른 과제를 주었습니다.
김선우는 23일 대전 한화전에 선발로 등판해 6이닝 동안 112개(스트라이크 60개, 볼 52개)의 공을 던지며 5피안타(탈삼진 4개, 사사구 4개) 2실점으로 7-2로 앞선 7회 고창성에게 바통을 넘겼습니다. 7회 팀이 4실점하는 등 추격권을 허용하기는 했으나 승패 추를 뒤바꾸지 않은 덕택에 김선우는 시즌 15승 및 개인 7연승을 달렸구요. 시즌 성적은 15승 7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3.18(24일 현재)입니다.

팀은 9회말 이대수의 1타점 좌익수 방면 2루타 때 1루 주자 김준호가 홈으로 쇄도하다 넘어지는 상대의 불운을 틈 타 7-6 신승했습니다. 이날 김선우의 최고 구속은 146km이었네요. 그의 평균자책점은 3.18로 약간 내려갔고 이날 승리는 8개 구단 전체 투수들 중 7번째 전 구단 상대 승리 기록입니다. 개인에게는 한 시즌 15승과 전 구단 상대 승리가 모두 처음입니다.
특히 이날 승리로 김선우는 1999년 마무리 진필중(한민대 투수코치) 이후 12년 만의 팀 국내 투수 한 시즌 15승 기록에 성공했습니다. 선발 투수로 따지면 지난 1995년 김상진(SK 투수코치)-권명철(LG 투수코치) 이후 16년 만이네요. 여기에는 서울 연고로 1차 지명 대어 투수를 지목할 수 있던 환경에도 불구, 선발형 주축을 키우지 못했다는 어두운 단면의 현실도 숨어있습니다.
사실 김선우는 1996년 1차 우선 지명 선수였으나 그가 입단한 것은 12년이 지난 2008년이었습니다. 그 12년 간 김선우는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는 불운한 선수 생활을 했으니 엄밀히 따지면 두산이 키운 선발 요원은 아닙니다. 12년 후 만들어진 투수를 데려왔다고 보셔도 됩니다.
선수 본인 또한 "내가 오랫동안 선발진의 축을 잡는 것보다 젊은 투수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내가 그들에게 힘을 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라며 현재보다 미래를 더욱 중요시하더군요. 5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렸으나 이에 실패한 두산에게 이 시점은 젊은 선수를 키워내야 하는 리빌딩 시기 복선과도 같습니다.
그동안 두산은 야수진에서 유망주들의 두각과 성장 릴레이를 이끌면서도 투수진에서 확실한 선발 유망주의 잠재력 폭발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2005년 1차 지명이던 김명제의 선수 생활은 사실상 끝이 났고 2009년 선발 9승을 올린 홍상삼의 그 해 평균자책점이 5.23에 달했을 정도입니다. 단시간 내의 성적 향상보다 훗날 '포스트 김선우'가 되어줄 유망주 발굴도 필수입니다.

김선우가 밟을 앞으로의 행보를 생각해도 장기적인 안목에서 관리가 필요합니다. 사실 지난해 김선우는 무릎 통증 외 후반기 팔꿈치 통증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선수 본인과 구단은 당시 내색하지 않으려했으나 이를 먼저 발견한 것은 상대팀이었습니다. 지난해 삼성 선수들은 김선우의 투구폼에서 "팔꿈치가 아픈 것 같다"라는 점을 먼저 파악했습니다. 또한 지난해 9월 11일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 최종 엔트리 발표 당시 "김선우는 팔꿈치가 안 좋아 제외했다"라는 김인식 기술위원장의 이야기에 김선우의 팔꿈치 통증 사실이 수면 위로 올라왔구요. 그럼에도 그는 지난해 13승 6패 평균자책점 4.02를 기록하며 154⅔이닝을 소화했습니다.
올 시즌 초반에도 몸 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었던 김선우입니다. 무릎 통증이 완화되었으나 팔꿈치 통증이 남아 시즌 초반 다소 고전한 감이 있던 김선우는 5월 들어 안정된 투구로 건강한 호투를 선보였습니다.
그러나 김선우의 최근 몸 상태는 다시 안 좋은 편으로 흘러갔습니다. 계속 이닝을 소화하다보니 팔꿈치와 어깨로 향하는 부하도가 높아졌구요. 시즌 전 선발진을 함께 구축할 예정이던 선수들이 연속해 전열 이탈하는 와중에서 김선우는 169⅔이닝을 던지며 국내 무대 4년 간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했습니다. 더스틴 니퍼트와 함께 선발 원투펀치로 활약했으나 타선 지원이 예년만 못해 외로운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고 계투진도 부상자가 속출하며 얄팍해졌네요.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라는 것이 김선우의 솔직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많은 팬이 팀 성적 하락에도 불구하고 구장을 찾아 응원해주신다. 쉽사리 포기할 수 없는 만큼 남은 시즌 로테이션을 지키며 최선을 다하겠다"라며 김선우는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졌습니다. 프로 선수로서 본분을 다하겠다는 뜻입니다.
몸 상태가 좋은 편은 아닌 프로 선수가 최선을 다하겠다며 자신이 책임지는 경기에서 제 몫을 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이 시점에서 선수가 뛸 환경을 만드는 구단은 다음 시즌, 그리고 그 이후 꾸려나갈 투수진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 집중하며 외로운 활약을 하다가 부상을 맞는 투수의 재래를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이미 같은 서울팀 LG는 상대적으로 열악했던 투수진 속 외로웠던 좌완 에이스 봉중근의 팔꿈치 부상을 막지 못했고 결국 올 시즌 막판 추진력을 잃은 채 9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좌절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명백하게 보이는 반면교사가 있음에도 노력 없이 '내년에는 좋아지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라면 그간 LG의 모습을 두산이 재현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예년답지 않았던 타선 불균형과 투수들의 잇단 이탈로 허약해진 계투진. 국내 무대 4시즌 중 가장 척박했던 환경 속 분전하며 15승을 올린 김선우입니다. 하위권으로 처진 팀 성적을 보상받기 위해 당장 다승왕 타이틀로 가는 길을 적극적으로 밀어주기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고군분투'라는 단어가 없는 투수진 기반을 닦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우리도 한 시즌 15승 올리는 국내 투수가 있다"라는 이야기를 앞세우기보다 더 멀리 보고 1군 전력감 투수층을 두껍게 만드는 장기적 안목이 절실한 시점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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