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 있어서 10승 투수의 의미는 크다. 선발 10승의 경우엔 한 시즌을 믿고 맡길 만한 선수라는 것을 보증해 주며, 구원 10승 역시 궂은 일을 마다않고 팀을 위해 헌신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팀에 10승 투수 3명만 있다면 최소한 4위는 어렵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지만 이 말은 최소한 올 시즌 LG 트윈스에겐 적용되지 않았다. LG는 '신에이스' 박현준(13승)을 필두로 외국인투수 듀오 벤자민 주키치와 레다메스 리즈(10승)가 선발 10승을 넘겨 23일 현재 3명의 10승 투수를 보유하게 됐다. 여기에 만약 임찬규(9승)가 1승만 추가하면 10승 투수 4명을 보유하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LG는 지난 2004년 현대 유니콘스(마이크 피어리 16승, 김수경 11승, 오재영 10승, 조용준 10승) 이후 7년 만에 10승 투수 4명을 배출한 팀이 된다. 참고로 2004년 현대는 막강한 마운드의 힘으로 정규 시즌 우승에 이어 한국시리즈까지 제패했다.
LG는 23일 현재 4위 KIA 타이거즈에 7.5경기 뒤진 5위에 머물러있다. 이제 남은 경기는 10경기 뿐. 사실상 9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됐다. 이대로 순위가 결정된다면 LG는 지난 2002년 두산(게리 레스 16승-박명환 14승-빅터 콜 12승) 이후 9년 만에 시즌 10승 투수를 3명 보유하고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팀이 된다.

한국 프로야구는 1988년 까지 전기와 후기로 나눠 전후기 우승팀이 한국시리즈를 갖는 방식으로 우승 팀을 가렸다. 이후 1989년 부터 4위 안에 이름을 올린 팀이 포스트시즌을 치르는 현재의 방식을 실시하게 됐다. 1989년부터 지난해까지 22시즌 동안 한 팀에서 10승 투수를 3명 이상 배출한 회수는 65회에 이른다. 지난 22년 간 10승 투수가 3명 이었던 적은 46차례, 4명은 16차례, 5명은 2차례, 6명은 단 1차례 있었다. 이 가운데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진 못한 팀은 총 10번 있었다. 즉 이제까지의 한국 프로야구 역사를 보면 10승 투수가 3명 있다면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확률이 84.6%나 된다는 뜻이다.
가장 먼저 '불명예'에 이름을 올린 팀은 공교롭게도 LG였다. 1991년 디펜딩 챔피언(전 해 우승 팀)으로 시즌을 시작한 LG는 에이스 김용수와 정삼흠, 김기범이 모두 나란히 12승씩 올리며 제 몫을 했다. 그러나 LG는 백인천 감독의 재계약 문제로 어수선한 팀 분위기 속에 6위로 내려앉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또한 같은 해 태평양 돌핀스 역시 최창호(15승)-정명원(12승)-박정현(10승) 등 세 명의 10승 투수를 배출했지만 최종 순위 5위로 가을야구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참고로 1991년은 8개 구단 가운데 총 6개 팀이 10승 투수를 최소 3명씩 보유했었다.
1992년엔 태평양이 박정현(13승)-박은진(10승)-안병원(10승)을 거뒀으나 허약한 타선으로 인해 두 시즌 연속 10승 투수를 세 명이나 보유하고도 포스트시즌에 나가지 못했다. 1994년엔 삼성이 박충식(14승)-성준(14승)-김태한(10승)의 역투에도 불구하고 시즌 5위에 머물렀고 1995년엔 해태 타이거즈가 이대진(14승)-송유석(10승)-이강철(10승)을 앞세어 시즌 4위를 차지했으나 당시 '3위와 4위가 3게임 이상 차이나면 준플레이오프 폐지'라는 조항으로 인해 아쉽게 물러나야 했다.
이제껏 10승 투수를 4명 배출하고 4강 진출에 실패한 팀은 딱 한 차례 있었다. 1993년 롯데는 윤형배(14승)-김상현(12승)-윤학길(12승)-염종석(10승)으로 이어지는 선발 라인업을 구축했지만 빈타에 허덕이며 결국 시즌 최종 성적은 6위에 머물렀다. 만약 올 시즌 LG는 임찬규가 1승을 추가한 뒤 4강 꿈이 좌절되면 역대 두 번째로 '10승 투수 4명 이상 보유' 했지만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팀으로 이름이 올라간다.
이에 반해 2001년 두산은 단 한명의 10승 투수를 배출하지 못하고도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두산은 이혜천(9승)-박명환(8승)-최용호(7승)-빅터 콜(6승)의 선발진으로 시즌 3위를 차지한 뒤 준플레이오프에서 한화를, 플레이오프에서 현대를 물리치고 대망의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누구나 삼성의 우승을 점쳤지만 두산은 경기당 8.67점을 뽑은 타선의 힘을 앞세워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우승을 차지했다. '미라클 두산'이라는 애칭은 이때의 극적인 우승으로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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