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cm, 103kg의 거구 투수. 그러나 힘있는 직구만 고수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때로는 구렁이 담 넘듯 낙차 큰 완급조절형 커브를 던지고 체인지업, 싱킹 패스트볼의 움직임도 수준급이다. 팀 성적이 예년 같았더라면 충분히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투수다. 두산 베어스의 외국인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30)의 시즌 13승은 뒤늦은 감이 있었다.
니퍼트는 지난 25일 광주 KIA전에 선발로 나서 7이닝 동안 4피안타(탈삼진 6개, 사사구 2개)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시즌 13승째를 거뒀다. 올 시즌 니퍼트의 성적은 27경기 173이닝 13승 6패 평균자책점 2.71(26일 현재). 가히 올 시즌 최고 외국인 투수로 놓기 충분한 성적이다.

특히 니퍼트의 경우는 단순히 빠른 포심 패스트볼만을 고수한 것이 아니라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는 구종을 적극 활용했다. 이미 장신에서 나오는 높은 타점을 지니고 있던 가운데서도 또 한 번의 응용력을 발휘한 셈이다.
시즌 초 홍성흔(롯데)은 니퍼트의 직구에 대해 "제구가 다소 높은 편이었다. 높은 공이 날아들어 일단 휘두르기는 했는데 워낙 볼 끝이 묵직해 제대로 뻗지 못하더라. 키 큰 오승환(삼성) 같은 느낌이었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직구 만으로도 위력적이던 니퍼트였으나 그는 체인지업과 싱커-커브를 섞어던지며 2할2푼4리의 낮은 피안타율을 기록했다. 규정이닝 피안타율 1위 윤석민(KIA)과 단 1리차 2위.
타 구단 전력분석원 또한 니퍼트와 레다메스 리즈(LG)를 비교하며 "직구 스피드는 리즈가 우월할 지 몰라도 구위와 변화구 구사력은 니퍼트가 훨씬 우월하다. 데니 바티스타(한화)가 선발로도 그런 공을 던질 수 있다면 모를까. 최고 외국인 투수는 니퍼트다"라고 이야기했다. 개인 차가 있으나 니퍼트가 올 시즌 최고 외국인 투수라는 의견은 대동소이했다.
메이저리그 시절의 티를 벗지 못하며 코칭스태프의 속을 썩인 페르난도 니에베와 달리 니퍼트는 사고방식도 유연했다. 한화와의 시범경기서 느린 퀵모션을 지적받으며 잇달아 도루를 허용했던 니퍼트는 왼발을 구르는 동작을 다음 경기서 완벽하게 수정했다. 이제 니퍼트의 퀵모션은 1.20초대로 처음 한국 무대를 밟을 때에 비해 굉장히 빨라졌다.
구위와 기량은 물론이고 사고 방식과 팀 적응력도 뛰어난 '스마트 피처' 니퍼트. 구단은 그에게 반드시 재계약 도장을 받고 말겠다는 입장이지만 순탄치는 않을 전망이다. 이미 일본 구단에서 스카우트팀을 파견해 니퍼트의 투구를 지켜본 데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에게도 '마이너 계약이 싫어 떠났던 니퍼트가 위력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라는 정보가 입수된 상황.
선수 본인은 "메이저리그 재복귀라면 모를까. 일본 무대는 생각지 않고 있다"라는 입장. 그러나 에이전트사인 보라스 코퍼레이션에서 거액의 오퍼를 받는다면 니퍼트의 향후 행보도 알 수 없다. 머니 게임에서 국내 구단이 일본 구단을 이기기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두산에서 14승을 올린 뒤 라쿠텐으로 옮긴 히메네스는 2년 최대 400만 달러를 받을 수 있는 계약에 센다이로 옮겨갔다. 지난해 말부터 팔꿈치가 좋지 않았던 히메네스였으나 그의 한국무대 경기력에 만족한 호시노 센이치 감독의 호평 아래 라쿠텐이 뜨거운 러브콜을 이어갔던 것. 일본 스카우트들은 현재 니퍼트의 경기력에 대해 "히메네스보다 한 수위"로 평가하고 있다.
우여곡절 속에서도 13승을 거두며 선발진 한 축을 제대로 지킨 니퍼트. 힘과 기교를 모두 갖춘 니퍼트를 향한 해외 무대의 치열한 구애 작전이 예상되는 가운데 두산이 그를 지킬 것인지 더욱 궁금해진다.
farinell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