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마무리 데니 바티스타(31)가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7월부터 대체 외국인선수로 한화에 합류한 바티스타는 한국 무대에 연착륙, 완벽한 마무리로 위용을 떨치고 있다.
바티스타 이전 한화의 초강력 마무리로는 '대성불패' 구대성(42)이 있었다. 그는 1999년 한화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 MVP였다. 바티스타가 더 주목받는 건 구대성을 연상시키는 능력들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 고무팔

바티스타에게 지난 25일 대전 롯데전은 잊을 수 없는 한판이다. 이날 8회부터 구원등판한 바티스타는 11회까지 무려 79개 공을 던졌다. 마무리투수가 무려 80개에 가까운 투수구를 기록할 정도로 많은공을 던졌지만 그의 볼끝에는 힘이 실려있었다. 11회 마지막 타자 황재균을 삼진으로 잡은 공은 153km 직구였다.
팀 사정상 많은 공을 던져야하는 상황에도 바티스타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케이"를 외쳤다. 이틀 연속 투구도 5차례 있었는데 그는 팀 승패를 고려하지 않은 채 "너무 오래 쉬면 제구가 안 된다. 자주 나가야 몸이 빨리 풀린다"며 연투를 자처하고 있다. 그런 그를 말리느라 한대화 감독이 진땀을 흘릴 정도. 정민철 투수코치도 "상당히 드문 케이스다. 긴 이닝을 던져도 지치지 않는 투구 메커니즘을 지녔다"며 "우리 투수 운용이 정상적이지 않은 중에도 스스로 납득하는 모습이 고맙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바티스타의 모습은 구대성을 연상시킨다. 구대성은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고무팔 투수였다. 보직을 가리지 않는 전천후 투수로 위력을 떨쳤다. 1996년에는 55경기에서 18승3패24세이브 평균자책점 1.88로 MVP를 차지했는데 당시 무려 139이닝을 던졌다. 선발로는 단 2경기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마무리도 평균 2~3이닝을 소화하며 철통같이 뒷문을 지켰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3·4위전에서는 일본을 상대로 무려 155개의 공을 뿌리며 완투한 전력도 있다.
▲ 탈삼진
마무리투수에게 탈삼진 능력은 필수 조건으로 꼽힌다. 주자 있는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르는 경우가 많은 마무리투수는 최소한의 진루타도 허용하지 않기 위해서는 결국 삼진을 잡아야 한다. 볼에 힘이 있어야 하고 확실한 무기를 갖추고 있어야 삼진을 많이 잡을 수 있다.
25일 롯데전에서 바티스타는 4이닝 동안 아웃카운트 12개 가운데 9개를 삼진으로 잡아냈다. 최고 155km 광속구와 130km대 파워커브의 조합으로 롯데 강타선을 무력화시켰다. 올해 32이닝 동안 탈삼진 54개를 기록했다. 9이닝으로 환산할 경우 무려 15.2개라는 어마어마한 수치. 198cm라는 큰 키에서 내리꽂는 투구폼에서 150km 초중반대 광속구와 낙차 큰 커브가 더 위력적으로 느껴진다. 보통 투수들과는 다른 특화된 장점을 극대화한 결과다.

역대를 통틀어 탈삼진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낸 투수도 구대성이다. 구대성은 통산 569경기에서 1128⅔이닝을 던지며 탈삼진 1221개를 기록했다. 9이닝당 탈삼진 9.73개. 통산 1000이닝 이상 던진 투수중 가장 높다. 구대성 다음이 선동렬(9.3개)이고 그 뒤를 류현진(8.5개)이 잇고 있다. 구대성은 좌완으로서 몸을 완전히 뒤틀어 최대한 공을 감춰나오는 독특한 투구폼에서 150km 강속구를 뿌려댔다. 여기에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결정구로 적절하게 구사했다.
▲ 위기해결
바티스타는 약점을 하나 갖고 있다. 종종 제구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피안타(16개)보다 볼넷(18개)·사구(1개)가 더 많은 것도 제구 불안 때문이다. 실제로 사사구 남발로 위기를 초래한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실점이 6점에 불과하며 평균자책점은 1.69다. 위기관리능력이 좋다는 뜻이다.
실제로 득점권에서 바티스타는 36타수 5안타로 피안타율이 1할3푼9리에 불과하다. 득점권에서 탈삼진 22개로 위력를 벗어났다. 만루 위기를 초래한 뒤 삼진으로 실점없이 막고 포효하는 바티스타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손에 땀을 쥐고 심장이 터질 듯한 상황인데 바티스타는 아무렇지 않게 위기를 넘어간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다.
구대성도 현역 시절 스스로 위기 자초한 뒤 아무렇지 않게 넘어간 적이 많았다. 대전고 신입생 시절 연습경기에서 일부러 만루 위기를 만든 뒤 "만루에서 대처하는 법을 알기 위해서였다"며 감독을 안심시키더니 실제로 후속 3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처리한 일화는 너무 유명하다. 구위가 조금 떨어진 2006년 이후에는 이런 장면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중요한 건 구대성이 결국 막았다는 점이다. 마지막 불꽃을 태운 2009년 구대성의 득점권 피안타율은 1할6푼7리였다.
현역 시절 구대성과 함께 선수 생활을 한 정민철 코치는 "우스갯소리로 대성이형과 바티스타가 흡사하다고 하는데 등판간격과 투구수를 떠나 마운드에 오르고자 하는 마인드가 가장 닮은 부분이 아닌가 싶다"며 "위기를 자초한 뒤 해결하는 스타 기질도 닮았다"고 말했다. 위기 상황을 즐길줄 아는 두둑한 배짱. 구대성과 바티스타가 가장 닮은 부분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무리로서의 위용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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