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몇 번 한 것 같다."
'캐넌히터' 김재현(36)이 은퇴식에 앞서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지난 1일 SK와 삼성의 경기가 열린 문학구장에서 만난 김재현의 표정은 여유가 넘쳤다. 옛 팀 동료들과 농담을 주고 받는가 하면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면서도 의연한 모습이었다. 취재진 앞에서는 선수 시절의 카리스마를 살짝 누그러뜨린 채 솔직한 입담을 선보였다.

김재현이 은퇴를 발표한 것은 지난 2009년 10월 15일이었다. 당시 KIA와의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에서 "내년 시즌이 끝난 후 은퇴하기 때문에 사실상 이번 한국시리즈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고 갑작스럽게 밝혔다.
그로부터 2년이 흘렀다. 지난 시즌 한국시리즈 우승 후 대만, 일본 우승팀과의 챔피언십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완전히 접고 미국으로 지도자 연수를 떠났다.
김재현은 '울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 "눈물이 많은 편이 아니라 그렇지 않을 것 같다"면서 "은퇴식을 몇 번 한 것 같다. 한국시리즈가 사실상 은퇴경기였고 지난 6월에도 두 번이나 기회가 있었다. 야구를 계속하고 있어서 은퇴식이 실감나지 않는다"고 웃었다.
김재현의 말처럼 은퇴 발표 후 중간중간 은퇴와 관련된 기사가 나왔다. 지난 시즌 직전에는 수없이 많은 인터뷰를 해야 했다. 시즌 후에는 밀려드는 만남을 거절해야 할 정도였다.
그러다 미국에서 지난 6월 25일 문학 LG전으로 은퇴경기가 잡혔다는 소식에 일시 귀국했다. 당시 김재현은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창밖을 봤다"며 설레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정작 은퇴식은 하루가 연기됐다. 장마전선과 태풍 메아리의 영향 때문이었다. 그러나 26일 역시 같은 이유로 은퇴식은 치러지지 못했다. 그리고 이날로 다시 밀렸다.

김재현의 은퇴식은 LG전서 열릴 예정이었다. 김재현이 특별히 요청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 일정과 김재현 연수팀(LA 다저스 산하 그레이트 레이크스 룬즈) 일정상 이뤄지지 못했다. 김재현은 LG전으로 은퇴식이 결정되지 않은 데 대해 "어쩔 수 없다. 요청을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라며 "노력을 했으니 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가려 한다"고 밝혔다.
이날 김재현은 SK-삼성전 바로 전 자신의 등번호 7번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다시 타석에 섰다. 그리고 친구이자 1994년 20(홈런)-20(도루) 달성의 희생양이었던 이호준의 볼을 다시 노려쳤다. 이제 김재현은 일본 요미우리로 지도자 연수를 떠난다. 아직 정확한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1년 동안 올해와는 다른 또 하나의 야구를 배우러 간다.
은퇴 발표 후 2년이 걸렸던 김재현의 마지막 길. 한창 때 작별을 택한 만큼 그라운드를 떠나는 것도 2년으로 균형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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