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에이스 반열', 김선우의 2011년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1.10.03 10: 48

"컨디션에 구애받지 않았다. 코너워크에 신경쓰고 타자들이 변화구를 노리면 더 느린 변화구를 던져 타이밍을 뺏고자 노력했다".
만 33세의 그가 뒤늦게 완급조절능력을 익혔다면 1년이 지난 지금은 이를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며 명실상부한 수준급 우완 선발로 자리매김했다. '써니' 김선우(34. 두산 베어스)가 비로소 국내 프로야구 수준급 우완 선발로 확실히 이름을 새겼다.
김선우는 지난 2일 잠실 LG전에 선발로 나서 6이닝 동안 87개의 공을 던지며 5피안타(탈삼진 2개, 사사구 1개) 1실점 쾌투로 시즌 16승 째를 올렸다. 시즌 마지막 등판이던 이날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며 김선우는 최종 성적표 28경기 16승 7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3.13(3일 현재)을 받아들었다. 사실상 시즌 마지막 등판.

고려대 시절이던 1997년 말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와 계약하며 미국으로 건너간 김선우는 이후 몬트리올-워싱턴-콜로라도-신시내티-샌프란시스코 등을 거치며 불운한 저니맨으로 생활했다. 콜로라도 시절이던 2005년 배리 본즈가 버틴 샌프란시스코를 상대로 '투수들의 무덤' 쿠어스필드서 4피안타 완봉승을 거두기도 했으나 한 시즌 팀의 주축투수로 활약한 성과는 없었다.
결국 2008년 자신의 지명권을 지닌 두산에 입단한 김선우는 첫 2년 간 직구 위주 투구로 경기 당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였다. 첫 해에는 어깨 부상, 무릎 부상이 겹치며 제 실력을 떨치기 어렵기도 했다. 그러나 김선우는 2010년 13승 6패 평균자책점 4.02를 기록하며 기교파 투수로 변신을 시작했다.
"그 때는 멋도 모르고 변신한 거라 사실 고민이 많았다. '이 타자가 어떤 공을 노리고 있구나'라는 생각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혼자 생각이 많아 사실 힘들었던 지난해였다". 충분히 좋은 성적을 거뒀던 지난해였으나 김선우는 과도기가 힘들었음을 토로했다.
지금은 다르다. 김선우는 선발로서 175⅔이닝을 소화하며 8개 구단 전체 투수들 중 4위에 해당하는 이닝이터 능력을 선보였다. 선발 제 몫 기준인 퀄리티스타트(6이닝 3자책점 이하)도 18회로 팀 동료 더스틴 니퍼트와 윤석민(KIA), 송승준(롯데)과 함께 전체 공동 2위에 올랐다. 올 시즌 중 팔꿈치 통증과 무릎 통증이 간헐적으로 찾아온 어려운 시기였음을 감안하면 더욱 값진 활약이었다.
"워낙 (양)의지가 리드를 잘해줬으니까. 의지가 내는 리드와 내 생각이 거의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제는 머릿 속으로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던지면 될 것 같다'라는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다. 지난해 부딪히면서 변화구를 던졌다면 이제는 타자의 수를 어느 정도 읽고 던지게 되는 것 같다".
주자 출루 유무에 따른 힘 조절 투구도 눈에 띈다. 김선우는 올 시즌 전체 투구이닝 10걸 중 유일하게 탈삼진이 두 자릿수(89개)에 그치고 있다. 반면 이닝 당 투구수는 아킬리노 로페즈(KIA, 14.5구)에 이어 벤자민 주키치(LG)와 함께 15.4구로 이닝 10걸 중 두 번째로 낮다. 탈삼진에 집중하기보다 땅볼 유도형 투구를 보여준다는 반증과 같다.
"기왕이면 타자를 빨리빨리 범타 처리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크다. 일부러 주자가 없을 때는 힘을 빼고 던지는 반면 주자가 나갔을 때 비로소 힘을 더해 던지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그렇게 힘 조절을 했기 때문에 올 시즌 많은 이닝을 소화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김선우는 올 시즌 팀 내 투수진 맏형이다. 평소 나서서 후배들에게 쓴소리를 하는 스타일이 아닌 김선우지만 후배들이 자문을 구할 때는 최대한 세심하게 가르쳐주려 노력하는 투수가 김선우다.
"먼저 나서서 가르쳐주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후배들이 물어 볼 경우 내가 아는 한 최대한 가르쳐주려고 노력한다. 젊고 잠재력 있는 투수들이 선발진 축을 잡아야 우리 팀이 오랫동안 강호로 자리잡을 수 있으니까". 그는 이미 지난해 마무리훈련서 이용찬에게 변형 체인지업을 전수했고 다른 후배들은 물론 동료 니퍼트의 질문에도 최대한 성심성의껏 답한다.
"올해 충분히 무리했다는 생각도 한다. 그만큼 시즌 마지막 경기서 다승왕 타이틀을 욕심내면 자칫 동료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팀 성적이 떨어진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있으니까. 더 중요한 것은 다음 시즌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고 강한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몸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4년 전 두산이 김선우에게 보여준 15억원의 투자는 분명 헛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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