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선수들이 잘한거지 뭐 있겠는가".
올해 한화는 객관적인 전력에서 최하위를 면하기 어려운 성적이다. 팀 평균자책점 8위(5.05) 팀 타율 7위(0.255). 야구통계학자 빌 제임스가 고안한 총 득점과 실점을 바탕으로 계산되는 한화의 기대 승률은 유일한 3할대(0.393)로 8개 구단 최하위. 하지만 한화의 실제 승률은 4할대(0.461)로 당당히 리그 단독 5위다. 객관적인 전력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한화에 있다는 뜻. 대표적인 게 바로 '야왕' 한대화 감독이 지랑하는 신기의 대타 작전이다.
▲ 한화 대타로 얼마나 재미 봤나

올 시즌 한화의 대타 타율은 2할1푼9리. 대타 타율만 놓고 보면 SK(0.241)-롯데(0.234)에 이어 3위다. 사사구와 희생타를 포함한 대타성공률도 3할3푼2리로 SK(0.379)-롯데(0.347)에 이어 역시 3위. 대타 타점도 29타점으로 넥센(37점)-SK(31점) 다음이고, 대타 결승타는 3개로 SK와 함께 롯데(4개)에 이어 2위다. 상당수 대타 팀 성적에서 3위권 안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타율과 성공률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대타 작전에 대한 의존도가 가장 높은 팀이 바로 한화이기 때문이다. 확률은 표본이 많을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화는 올해 대타 작전을 무려 235회나 냈다. 가장 적은 두산(134회)보다 100회 더 많이 했다. 그리고 중요한 승부처나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마다 대타 작전으로 활로를 뚫었다.
올해 한화의 결정적 경기에는 언제나 대타 작전이 있었다. 최근에는 지난달 25일 대전 롯데전에서 이양기가 연장 11회 대타로 나와 끝내기 안타를 쳤고, 2일 목동 넥센전에서는 대타 이대수가 볼넷을 골라나가 득점권 찬스를 만든 뒤 다시 대타로 나온 최진행이 결승 2타점 2루타로 승부를 갈랐다. 연속 대타 작전으로 넥센의 불펜을 무너뜨린 것이다.
▲ 야왕의 대타 작전 그 비밀은
자연스럽게 대타를 쓰는 한대화 감독에게 관심이 모아진다. 객관적인 기록 이상으로 강렬한 임팩트를 남기고 있는 한대화 감독의 대타 작전은 이제 '야왕의 한 수'로 불린다. 이제 승부처마다 한 감독이 기용하는 대타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에 관심이 모아질 정도. 하지만 한 감독은 "내가 잘한 게 뭐가 있나. 모두 다 선수들이 잘 쳐서 그런 것"이라며 자신을 향한 스포트라이트에 손사래쳤다.
그렇다면 과연 한 감독의 대타 작전에는 어떤 비밀은 숨어있을까. 한 감독은 "데이터도 보지만 선수들의 컨디션과 상대 투수의 성향을 살펴본다. 타자들의 스타일도 고려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데이터를 참고하면서 특유의 감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대타 기용시기를 적절하게 살핀다. 한 감독은 "상대 투수 교체시기를 보고, 대타를 아껴 놓는 경우도 있다. 대타를 아무 때나 쓸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물론 승부를 걸 때에는 과감하게 건다. 지난 2일 목동 넥센전이 대표적이다. 오재필이 2루 도루를 성공시키며 2사 2루 득점권 찬스가 되자 한 감독은 전현태를 타석 도중 빼고 이대수를 대타로 넣는 승부수를 던졌다. "득점권이라 상대를 압박할 수 있고, 1루가 비어있기 때문에 상대팀에서 대수와 쉽게 승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좋은 볼을 던지기 어려웠는데 대수가 볼넷을 잘 골라냈다"고 설명했다. 이대수가 볼넷을 얻어나가 찬스가 이어졌고, 최진행을 다시 한 번 대타로 기용해 넥센 벤치를 압박했다. 넥센도 마무리 손승락을 투입했지만, 최진행이 보란듯 2루타를 터뜨리며 승부를 갈랐다. 한 감독은 "운이 좋았지만, 무엇보다 선수들이 잘한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하지만 승부처에서 상대 투수를 끄집어내며 압박하는 절묘한 대타 작전으로 벤치의 힘을 보여줬다.
▲ '속닥속닥' 야왕은 무슨 말을 할까
한 감독이 승부처에서 대타 작전을 쓰기 전 타자들에게는 하나의 통과의례가 있다. 바로 벤치 앞에서 한 감독에게 이런저런 주문을 듣는 것이다. 한 감독은 팽팽한 승부처에서 타자들을 따로 불러 소곤소곤 이야기한다. 이른바 '속닥속닥'으로 유명한 장면. 한 감독의 주문을 받은 타자들은 항상 "감독님 주문대로 편하게 친 것이 통했다"고 입을 모은다.
한 감독은 "찬스 때 타석에 들어가면 가장 중요한 게 부담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부담을 갖지 않게끔 편하게 치라는 주문을 많이 한다"고 밝혔다. 이어 "상대 투수가 주로 이런 볼을 던질 것이니 이에 준비하라고 이야기한다. 주로 어려운 공 대신 쉬운 공을 공략하라는 주문"이라고 설명했다. 팽팽한 승부처에서 타석에 들어서기 전 타자의 긴장을 풀어주고 공략법을 알리는 일종의 원포인트 레슨. 종종 상황에 따라 베테랑 선수들에게 의견을 묻는 경우도 있다.
한 감독은 "대타들에게 속닥거리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부담감을 없애기 위함"이라며 "결국 선수들이 잘하기 때문이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 감독의 평소 지론이 '야구는 선수가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감독은 올해 한화 팀 내 최고 대타로 우타자 이양기와 좌타자 고동진을 꼽았다. 이양기는 대타로 2루타 5개 포함 48타수 15안타 6볼넷 2사구 타율 3할1푼3리 13타점으로 활약했다. 대타성공률 4할1푼1리. 리그 대타 최다타점을 올렸다. 고동진도 2루타 4개 포함해 28타수 8안타 3볼넷 2사구 타율 2할8푼6리 3타점을 기록했다. 대타성공률 3할9푼4리. 한 감독은 "모두가 잘했지만 이양기와 고동진이 대타로 잘했다"고 칭찬했다.
감독의 성적이라는 대타 작전. 한 감독은 오히려 집중력을 발휘하며 기대에 보답한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이심전심. 한 감독이 자랑하는 신기의 대타 작전은 그래서 더욱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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