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일은 인간은 물론, 모든 생명체들이 생존을 위해 추구하고 있는 지극히 고전(古典)적이면서도 기본이 되는 방법이자 이치이다. 그러나 승부를 다투는 스포츠 세계의 경쟁관계 안에서는 어느 하나가 득을 보거나 살면 어느 한쪽은 손해를 보고 물러서야 하는 것이 또한 이치. 승자만이 모든 걸 차지한다라는 어느 노래가사를 굳이 빌지 않더라도 프로야구의 속성상 상생은 먼 나라의 이야기일 수 있다. 상생불가. 이 명제 앞에서는 야구기록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지난 9월 28일, 두산과 삼성의 경기(잠실)에서는 승부가 아닌 기록을 앞에 놓고 서로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묘한 상황이 펼쳐진 바 있다. 주인공은 삼성의 최형우와 오승환. 포지션상 같은 투수도 아니고 타자도 아닌, 더욱이 같은 팀 소속이라 투타 대결을 벌일 상황도 아닌 두 선수의 기록이 마찰을 빚은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이날 삼성의 4번타자로 나선 최형우는 1회초 선제타점 2루타를 시작으로 3회에 그 어렵다는 3루타(역전 2타점), 7회에는 추가타점 좌전안타를 차례대로 뽑아내며 대망의 사이클링 히트 기록달성에 홈런 하나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올 시즌 홈런부문 1위(당시 29개)를 달리며 홈런왕 등극이 유력시 되고 있는 최형우임을 감안하면 9회초에 돌아오는 마지막 타석에서 큰 것 한 방을 기대해도 좋을 듯한 분위기였다. 2009년 4월 두산 이종욱(통산 14번째) 이후로 거의 3년 동안 사이클링 히트가 나오지 않고 있는 상태라 시간적으로 봐서도 한 번쯤 나옴직한 시기였다. 9회초 1번부터 공격을 시작하는 삼성이 ‘삼자범퇴’를 당하는 날엔 최형우에게 기회조차 오지 않을 수 있었지만, 1사후 박한이가 안타로 출루하며 가능성을 열었고, 이어 3번 모상기가 병살타의 블랙홀을 비켜간 데 힘입어 최형우는 타석에 들어설 수 있었다. 1사 1, 2루. 투수가 고의4구는 커녕 도망도 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상황이라 투수 서동환(두산)은 정면승부를 걸어왔고, 때를 기다린 최형우의 방망이가 크게 돌았다. “와!” 맞는 순간 넘어갔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관중들을 자리에서 불쑥 일으켜 세운 커다란 포물선의 타구. 그러나 잠실구장의 가장 깊은 곳인 125m 센터 쪽 담장 앞에서 타구는 중견수 정수빈에게 잡히며 최형우는 아쉽게 진기록의 꿈을 접어야 했다. 다른 구장이었다면…(그렇다면 3루타가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 모두가 아쉬워한 그 순간, 최형우의 좌절이 곧 기회로 다가온 선수가 있었다. 바로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던 오승환이었다. 스코어 4-2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최형우의 중견수 플라이가 홈런이 되었더라면 점수는 7-2로 크게 벌어져 그가 마무리를 위해 마운드에 오를 일은 없었을 터. 그러나 최형우의 홈런 불발 덕에 오승환은 5-2의 세이브 올리기 딱 좋은 환경에서 마운드에 오를 수 있었다. 9회말 오승환은 세 명의 타자를 상대로 삼진 두 개를 섞어 올 시즌 46번째의 세이브를 따내며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시즌 최다 세이브 기록이자 아시아 신기록인 47세이브(2006년) 타이기록에 한 개 차로 바짝 다가서는데 성공했다. 아시아 신기록인 47세이브를 넘어 정규리그 MVP까지 노려보고 있는 오승환으로서는 잔여경기가 얼마남지 않은 상황이라 한 경기가 아까운 것이 현실. 반면 최형우로서도 홈런왕은 물론 이대호(롯데)와 경합 중인 타점부문 1위를 위해 전력질주하고 있는 상태라 한 타석도 쉬이 흘릴 수 없는 처지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올 시즌이 끝났을 때, 운이 따르지 않아 미수에 그친 최형우의 시즌 30호 홈런과 운이 수반된 오승환의 46세이브가 각자에게 결과적으로 어떤 영향을 가져다 줄는지, 개인 타이틀 획득 차원을 넘어 시즌 MVP 후보로서도 전혀 손색없는 양 선수의 기록과 타이틀 종착역이 자못 궁금하다. 이 밖에 최형우와 오승환의 관계처럼 시차를 두고 벌어지는 상생불가 충돌 말고도 투타 정면대결에서 오는 기록의 충돌도 있다. 이미 알려진 내용이지만 1994년 6월 대전구장서의 LG 야생마 이상훈과 한화의 박지상이 맞닥뜨렸던 노히트 노런과 연속경기안타 기록의 격돌은 야구기록충돌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6회까지 노히트 노런의 기록을 이어가고 있던 이상훈이 전날까지 17경기 연속안타 행진 중인 박지상과 피해갈 수 없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던 기억으로, 자신의 기록을 살려내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기록을 무참히 깨야만 하는 숙명적인 조우였다. 당시 박지상은 유격수 앞 강습 내야안타(18경기)를 쳐내며 이상훈의 대기록을 정지시킨 바 있다. 야구기록의 충돌에 관한 또 다른 얘기 하나. 1997년 즈음, 모 팀의 투수코치와 타격코치가 동시에 공식기록원을 찾아와 기록판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적이 있다. 각자의 분야가 달랐기에 어필내용은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얘기가 진행되는 도중, 타격코치가 ‘본론과 관계가 없는 특정 타구에 대해 왜 안타로 기록하지 않았는지’를 묻자 옆에 서 있던 투수코치가 느닷없이 공식기록원을 대신해 이런 말을 남긴 일이 있다. “그런 걸 안타로 주면 투수들이 죽어요!” “...!” 타 팀이 아닌 아군에 관계된 판정에 대해 두 명의 코치가 같은 상황을 정반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기록의 충돌이라는 것이 어떤 형상의 얼굴을 갖고 있는지 이 한 구절 안에 모두 녹아있다고 볼 수 있겠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