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보다 몸놀림도 둔해졌다. 순발력도 눈에 띄게 떨어졌다. 그러다 보니 '한 물 갔다'는 차가운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베테랑 내야수는 포기하지 않았다. 잃어버린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소속 구단에 방출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리고 포스트시즌의 사나이답게 가을 무대를 종횡무진하고 있다. 어쩌면 가을 잔치의 짜릿함을 만끽하기 위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주인공은 SK 와이번스 내야수 박진만. 지난 시즌이 끝난 뒤 SK와 1년간 최대 3억원에 입단 계약을 맺은 박진만은 지옥 훈련으로 악명이 높은 SK 캠프에서 젊은 선수들과 함께 땀방울을 쏟아냈다. 그가 흘린 땀방울은 헛되지 않았다. 전성기 못지 않은 움직임을 선보이며 "역시 박진만"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박진만 또한 "빠질 듯한 타구가 잡히기 시작했다"고 흡족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선수답게 자신만의 포지션만 고집하지 않았다. 유격수 뿐만 아니라 2, 3루 심지어는 1루수로 출장했다. 낯선 포지션이지만 타고난 수비 능력을 바탕으로 너끈히 소화했다. 그리고 경기에 나갈 수 있다는 자체에 행복함을 느꼈다. 그 덕분일까. 박진만은 특유의 반달눈 웃음을 짓는 날이 늘어났다. 통산 6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박진만은 "고향팀에서 7번째 우승 반지를 끼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낸 바 있다. 자신의 등번호와 같은 7번째 우승 반지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왼쪽 무릎 상태가 좋지 않은 박진만은 KIA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유격수로 출장했다. 컨디션을 감안하면 3루수가 편하지만 "평생 내가 맡아왔던 자리"라고 유격수 출장을 강행했다. 역시나 그는 녹슬지 않은 기량을 뽐냈다. SK는 1차전에서 1-5로 패한 뒤 파죽의 3연승을 질주하며 플레이오프 진출 티켓을 거머 쥐었다. "고향 팀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던 그의 바람이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가고 있다. '고향만두' 박진만의 가을 잔치는 이제부터 시작된다.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했다. 화려하게 재기한 '국민 유격수' 박진만을 두고 하는 표현이었다. what@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