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준PO를 통해 만나본 연속기록의 명암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2.03.15 07: 40

철저한 침묵이었다. 벼랑 끝 0-8이라는 절망적 스코어에 짓눌린 KIA 덕아웃의 침통함도 침통함이었지만, 9회말 2사후 대타로 타석에 들어선 KIA의 정신적 지주 이종범의 얼굴은 한없는 무거움으로 딱딱히 굳어있었다. 그는 마치 마네킹이라도 된 듯, 정지된 자세로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들어오는 SK 이승호의 공 3개를 묵묵히 흘려 보냈고, 결국 24이닝 연속 무득점이라는 참담한 기록의 멍에를 뒤집어 쓴 채 KIA 타이거즈의 2011 시즌은 그렇게 끝이 났다. 준플레이오프 2차전(문학구장)에서 선제 1승을 따낸 KIA가 5회초 최희섭의 좌월홈런으로 2-0으로 달아났을 때만해도 플레이오프 진출 티켓이 KIA의 수중에 반쯤 들어와 있는 듯 보였는데, 그것이 KIA의 준플레이오프 마지막 득점이 될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2차전 6회초 선두타자 김선빈의 3루수 직선타구 아웃으로부터 시작된 0의 행렬(6이닝)은 광주로 장소를 옮겨 치러진 3차전과 4차전(18이닝)에서도 멈출 줄 몰랐고, 그 결과 KIA는 단일 시즌 연속이닝 무득점 신기록이라는 달갑지 않은 기록을 가을 야구사에 남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SK로서는 의기양양한 기록이 되겠지만. 그 동안 단일 시즌 최장 연속이닝 무득점 기록은 SK와의 한국시리즈에서 4,5차전 연속으로 0-4의 완봉패(18이닝)를 당한 것에 3차전 마지막 3이닝 무득점 기록을 보태 총 21이닝 연속 무득점에 묶였던 2007년의 두산이 보유하고 있던 터. KIA는 여기에 3이닝을 더 얹은 셈이다. 그렇지만 단일 포스트 시즌이 아닌 복수의 포스트 시즌을 기준으로 한다면 KIA의 24이닝 연속 무득점도 감히 명함을 내밀지 못할 만큼의 메머드급 기록이 존재하고 있다. 바로 삼성의 28이닝 연속 무득점 기록이 그것이다. 1991년부터 1993년 사이 3개년에 걸쳐 삼성은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오가며 28이닝 연속 단 한 점도 뽑아내지 못하는 대 굴욕을 경험했었다. 그 비극의 씨앗은 1991년 빙그레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대구) 5회초에 뿌려졌다. 그 해 5이닝을 저금(?)해 둔 삼성은 이듬해인 1992년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두 경기 연속 완봉패(18이닝)를 당하며 무득점 이닝을 23이닝으로 불렸고, 1993년 LG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서의 5회를 더해 총 28이닝 연속 무득점이라는 허망한 역사를 쓴 바 있다. 그러면 포스트 시즌이 아닌 한국프로야구사에 있어 가장 긴 이닝에 걸쳐 점수를 올리지 못한 치욕적 기록사례는 어느 팀이 갖고 있을까? 기록연감을 뒤져보니 팀 연속 이닝 무득점 기록이 무려 42이닝으로 탑재되어 있었다. 1986년 7월 25~30일 사이 5경기에 걸쳐 완봉패 2회, 0-0 무승부 1회를 포함, 총 42이닝 연속으로 무득점을 기록했던 청보 핀토스가 그 주인공이었다. 겉만 놓고 보면 불명예스러운 기억이지만 0-0 무승부로 끝났던 그 해 7월 27일 해태와 청보의 인천경기는 차동철(해태)과 김신부(청보) 두 투수의 15회 사상 첫 완투대결이라는 경이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한국야구사의 귀한 기록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15회 연장전 완투 맞대결은 모두 4차례 있어왔지만 무득점 무승부는 이 경기가 유일무이하다. 한편 2011 준플레이오프에서 SK는 팀 연속기록이 아닌 개인 연속기록에서도 새로운 신기록 하나를 추가했다. SK 박정권이 11타석 연속출루라는 신기록을 작성해낸 것이다. 2차전 첫 타석까지 범타로 물러난 박정권은 두 번째 타석에서의 2루타를 시발로 4차전 세 번째 타석 때 2루 땅볼로 물러나기까지 무려 11타석 연속 출루하며, 종전 김현수(두산, 2009년)가 보유하고 있던 9연타석 연속 출루(5안타, 4볼넷)기록을 갈아치우는데 성공했다. 그 사이 박정권은 6개의 안타와 5개의 볼넷(고의4구 2개 포함)을 기록하며 100% 출루, SK가 전력상 열세라는 예상을 뒤엎고 KIA를 물리치는데 있어 1등 공신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냈다. 개인 연타석 출루기록에 관한 정규리그의 기록은 또 어떠할까? 박정권이 세운 기록보다 2타석이 더 많다. 2003년 SK 이호준과 2007년 한화의 외국인선수 제이콥 크루즈가 각각 기록한 13타석 연속 출루기록이 최다 연속 출루기록으로 연감에 올라있다. 이호준은 8월 17~19일 사이, 크루즈는 4월 18~22일 사이 각각 13타석 연속으로 출루한 이력을 갖고 있다. 단일 경기로는 2010년 4월 9일 한화의 김태완이 사직 롯데전서 기록한 8연타석 출루(4안타 포함)가 최다 기록. 참고로 타자의 연속 출루기록 인정에 있어 안타나 4사구가 아닌 수비수의 실책으로 타자주자가 1루에 출루한 경우에는 기록이 중단된 것으로 간주된다. 땅볼타구로 선행주자가 아웃 되는 사이 타자주자가 1루에 출루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타인의 힘이 아닌 타자 자신의 능력으로 출루한 것만이 정상적인 출루로 인정된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SK 박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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