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트시즌에서 모든 SK 와이번스 선수들의 모자에는 '10'이라는 숫자가 쓰여 있었다. 심지어 이만수(53) 감독대행의 모자에도 '10'이 보였다.
숫자 10의 주인공은 바로 SK 외야수 조동화(31). 가을 야구에 강하다고 해서 '가을동화'라는 애칭이 붙은 조동화는 지난달 20일 사직 롯데전에 중견수로 출장해 수비 중 플라이 타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왼쪽 무릎을 다쳐 이번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타력도 타력이지만 실책 한 두개에 결과가 좌우되는 큰 경기에서 안정적인 수비를 자랑하는 조동화가 없는 것은 SK의 전력에 큰 구멍일 듯 보였다.
그러나 선수자원이 풍부한 SK는 역시 무서웠다. SK는 어느 때보다 끈끈한 외야 수비로 조동화의 빈자리를 메웠다. 김강민과 박재상, 안치용이 위기 때마다 그림 같은 호수비를 보여줬다. 조동화를 대신해 생애 첫 포스트시즌을 치른 임훈은 기대치보다 높은 모습으로 SK의 힘을 느낄 수 있게 했다. SK 외야진은 롯데 타자들의 특성상 어느때보다 큰 플라이가 많이 나왔던 플레이오프에서 단 한 개 만의 실책을 범하며 동분서주했다.

그중에서도 '난세 영웅' 안치용은 공수 양면에서 가장 돋보였다. 안치용은 플레이오프 5경기에서 15타수 6안타 3타점 타율 4할을 기록, SK 타자 중 가장 높은 타율을 보였다. 지난 16일 1차전에서는 4-4에서 7회초 역전 2점 홈런을 때려내기도 했다. 장타율은 6할6푼7리, 출루율은 4할7푼1리에 달했다. 안치용은 수비에서도 주로 우익수로 출장, 실책 없이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김강민도 18타수 6안타 3타점 3할3푼3리의 타율로 안치용과 함께 팀내 세 번째로 많은 안타를 터뜨렸다. 비록 1차전에서 송구 실책을 한 번 저지르긴 했지만 5차전에서는 담장에 꽂힐 뻔한 높은 타구를 잡아내는 등 중견수로서 외야를 튼튼히 지켰다.
주전 좌익수 박재상은 19타수 3안타 타율 1할5푼8리로 공격면에서는 조금 부진했으나 수비면에서 나무랄데 없는 실력을 보여줬다. 3차전에서 6회 강민호의 타구를 담장을 타고 올라가 잡는다던지 달려가면서 타구를 처리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5차전에서는 김주찬의 타구가 담장을 맞고 튀자마자 잡아내 바로 송구하는 호수비를 선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SK의 큰 소득의 백업멤버 임훈의 성장이다. 조동화를 대신해 엔트리에 포함된 임훈은 준플레이오프에서 수비 실책을 저지르기도 했지만 기대보다 안정된 실력으로 플레이오프에도 승선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3경기에만 출장했지만 실책 없이 좋은 수비를 펼쳤다.
임훈은 플레이오프 첫 선발출장이었던 5차전에서 2-1로 아슬아슬하게 앞서 있던 5회 2사 후 바뀐 투수 장원준의 공을 힘 빼고 쳐서 중전 바가지 안타를 만들며 공격의 물꼬를 텄다. 임훈이 후속타자 정근우와 박재상의 연속 안타로 홈을 밟으면서 SK는 달아날 수 있었다. 이날 정근우와 부딪힐 뻔 하면서도 끝까지 공을 놓치지 않던 호수비도 돋보였다.
SK는 1군과 2군 선수들의 실력차가 가장 적은 팀 중 한 곳으로 꼽힌다. 그만큼 기량이 풍부한 선수들이 많다는 의미다. 주전 멤버와 백업 멤버의 차이가 적을 수록 팀은 안정된다. 한 명이 자리를 비워도 크게 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SK가 올 시즌 후반 줄부상에 신음하면서도 3위를 지킬 수 있었던 것도 그 까닭이다.
SK는 이들의 활약을 앞세워 롯데를 3승2패로 꺾고 한국 시리즈에 진출했다. 역대 최초 5년 연속 한국 시리즈 진출에 성공한 SK는 25일부터 정규시즌 우승팀 삼성 라이온즈와 만나게 된다. SK가 삼성을 맞아 그 무서운 힘을 다시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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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상(위)-임훈(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