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와 멘티의 따뜻한 성장 영화, 순정만화 속 주인공처럼 완벽한 외모의 남녀배우가 벌이는 달달한 로맨스 등 훈훈한 영화들의 흥행 바람이 거센 요즘 극장가에 돌연변이가 나타났다.
영화 ‘옹박-무에타이의 후예’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프라챠 핀카엡 감독의 첫 번째 글로벌 프로젝트 ‘더 킥’과 지난 14일 폐막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3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화제작으로 떠오른 성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이 바로 그들이다.
‘더 킥’은 태국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문사범과 그의 가족들이 태국왕조의 ‘전설의 검’을 되찾기 위해 벌이는 액션 영화. ‘전설의 검’을 빼돌리려는 악당과 이를 막으려는 태권도 고수 가족들의 대결을 기본 골격으로 하고 있는 만큼 탄탄한 스토리나 ‘헉’소리나는 반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옹박’ 시리즈에 참여했던 태국 제작진과 국내 제작진이 의기투합한 프라챠 핀카엡 감독의 첫 번째 글로벌 프로젝트란 명성에 걸맞게 ‘더 킥’은 러닝타임 내내 관객이 한 시도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인간 새들의 향연’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전 출연진이 보여주는 화려한 액션 기술과 고난도 무술 연기는 티켓 값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제 값을 다 하기 때문.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은메달리스트인 고집불통 아빠 문(조재현), 역시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이자 어딘가 코믹한 분위기가 풍기는 강인한 엄마 윤(예지원)의 기대 이상의 액션은 말 할 것도 없고, 이 영화를 통해 스크린 데뷔에 나선 나태주와 태미는 실제 태권도 메달리스트 출신으로 CG와 대역 없이 고난도의 리얼 액션을 선보이며 극에 현실감을 더한다. 태국 최고의 액션 스타 지자 야닌이 보여주는 마샬아트의 정수도 빼 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마샬아츠의 거장 프라챠 핀카엡 감독과 한국 대표 배우들이 만나 완성된 액션 영화 ‘더 킥’은 재미는 얻고 스트레스는 한 방에 풀 수 있는 탄산음료 같은 매력을 지녔다.
반면, 성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은 전국에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영화 ‘도가니’와 마찬가지로 충격적인 현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연상호 감독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인 이 작품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감독상, 아시아 영화진흥기구상(NETPAC), 무비꼴라쥬상 등 3개 부문을 석권하며 평단과 관객들로부터 집중적인 관심을 모았다.
‘돼지의 왕’은 회사 부도 후 충동적으로 아내를 살인한 경민(목소리 오정세)이 자신의 분노를 감추고 중학교 동창이었던 종석(목소리 양익준)을 찾아 나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 스릴러란 장르답게 소재와 스토리가 모두 충격 그 자체다.
중학교 1학년 교실 안, 그들만의 계급사회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폭력과 묵인, 그 상처로 인해 일그러져버린 두 남자의 운명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긴장감 있게 전개돼는 이 작품은 특히 더빙 작업에 참여한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 배우 오정세의 목소리 열연이 더해지며 마치 실사를 보는 듯한 섬뜩함을 풍긴다. 러닝 타임 내내 옅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듯한 착각은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사실적으로 극화시킨 이 작품의 힘인 듯 했다.
훈훈한 감동과 아름다운 영상미, 흥미진진한 볼거리로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장식하고 있는 영화들에 비하면, ‘더 킥’과 ‘돼지의 왕’은 흥행 문법에서 조금은 벗어난 듯 보이는 돌연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들이 가진 독특한 개성과 진정성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기 충분할 만큼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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