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의 변죽 딴죽] 김래원. 연기파 배우다.
드라마 나 영화 등을 본 이들이라면 공감할만한 명제다.
하지만 의 김래원은 연기파가 아니다. 그 어정쩡함이 짜증난다.

수애. 역시 연기파 배우다.
하지만 김래원이 숨을 막는다면 수애는 숨을 가쁘게 한다.
‘김수현 드라마 증후군’이다.
‘할 얘기 있으면 해야지 왜 얘기 못하고 살아?’
작가 김수현의 논리다.
그래서 김수현 드라마에서 ‘말 못하고 죽은 귀신’은 없다. 오죽하면 여주인공이 “차 좀 부탁할게요”할 때 대본상 호텔직원 1쯤 될 사람조차 따박따박 “오래 걸리지않아요” 라고 대사 치고는 차를 가지러 간다. 카메라도 마이크도 호텔직원1을 놓치지 않는다.
편하고 개연성있는 일상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이라면 모를까 드라마적으론 불편한 진실이다.
자신의 소심함, 우유부단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랑 함께 할 수 없는 김래원. 주변의 엄마, 엄마 친구들이 증언하길 어려서부터 무뚝뚝 했단다. 그런 김래원이 헤어지는 마당의 수애를 상대론 별 걸 다 트집잡아 따지는 수다스러움을 선보인다.
‘무뚝뚝하지만 수다스러운? ’
사람이니까 천변만화할 수 있다. 하지만 천하의 연기파 김래원이란들 그 비위를 어찌 맞출까?
무뚝뚝하자니 수다스러워야하고 수다스럽자니 무뚝뚝해야 된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 김래원이 갈피를 못잡는 이유다.
사실은 무뚝뚝하지만 너무나 사랑해서, 사랑하는데 헤어져야 돼서 수다를 안 떨고는 못 배길 상황? 그럴수도 있다. 그렇게 수다를 떨고봤더니 다음 카운터파트를 상대로는 예의 무뚝뚝함으로 돌아가야 되는?
확실히 쉽지않은 일이다.
드라마의 대사톤은 어림짐작 일상 대화의 1.2배는 느리다.
전파를 통한 공중파의 의미전달속도다.
‘흥행보증수표’의 명찰을 단 김수현 드라마.
일상 대화보다 1.2배 빠른 속력으로 의미전달 확실히 할 수 있는 연기자가 아니라면 나서기가 힘들다.
말느리기로 소문난 성지루같은 연기자라면 김수현 드라마는 언감생심이다.
여백이 없다.
스토리의 탄탄함이 기필코 ‘근거없음’으로 낙인찍고 지나갈 만한 일이지만 김수현 드라마는 숨가쁘다.
연기자들사이에 ‘김수현 사단’이 존재함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김수현 사단’은 괜히 김수현 사단이 아니다.
그 빠듯한 대사량 속에서 연출이 허용한 한숨 돌릴 틈을 이용해 여백을 창출해내는 연기자. 드라마작가 김수현은 그런 배우들을 사랑한다.
김해숙의 대사량은 대본상 숨가쁠지언정 화면상 적당한 너스레를 동반해 연출시간을 맞춰낸다. 그들이 모름지기 김수현사단의 연기자들이다.
김래원도 수애도 어느 순간 그런 여지있는, 여지를 만들어 내는 연기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어설픔을 참고 넘어갈 의무가 시청자들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노력하기 때문에 이쁘다고 곱게 보아넘길 의무도 없다.
김수현스쿨이 발굴한 미래의 연기자를 확인하는 재미도 물론있다.
하지만 드라마 을 보면서 김수현 주인공의 성장드라마를 같이 볼 의무는 시청자에게 없는 것이다..
그렇게..
김수현이라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끔은 김수현이라서 짜증나는 이야기가 돼기도 한다.
[극작가, 칼럼니스트]osensta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