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는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 진정한 영웅은 우리 선수들이었습니다.”
10월 3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우승트로피를 삼성 라이언즈에게 내주고 난 직후 SK 와이번스 이만수 감독대행이 마지막 기자회견장에서 남긴 한마디였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의 눈빛은 강렬함을 잃지 않았다. 덕아웃에서 파이팅 넘치던 그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그러나 기자회견실에 있던 모든 기자들과 팀 관계자들은 그의 진실성을 의심할 수 없었다. 그는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짧은 기자회견 시간 동안 그는 감독 대행기간 마음속 깊이 숨겨 두었던 이야기들을 하나 둘씩 꺼내놓기 시작하였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5차전이 끝나고 난 뒤에는 선수들에게는 90도로 인사했습니다. 정말 고맙다고….”
그가 SK 감독대행으로 지내는 동안 정말 많은 사건사고들이 있었다. 김성근 감독의 돌연 해임에 분노한 팬들은 야구장을 습격하여 유니폼을 태우며 그를 감독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팬들은 경기 중 대형 피켓을 들고 그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인터넷상에 올라오는 각종 악성 댓글들은 그와 그의 가족들에게 상처로 고스란히 돌아가고 말았다. 야구감독이 공인이라지만 어느 누구도 감당하기 힘든 비판과 외면이었다.
그러나 헐크는 강했다. 그는 포기 하지 않았고 외로움은 그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이만수 감독대행은 덕아웃에서 더 크게 파이팅을 외쳤다. 왜냐? 그는 진정한 프로였기 때문이다.
프로의 세계는 잔인하고 때론 피눈물을 흘려야 할 때가 오지만 진실한 노력은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SK라는 야구팀은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선수들은 외부에서 들려오는 비판과 험담을 무시한 채 또 하나의 새로운 SK 팀워크를 만들어 갔다. 그럴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선수들이 이만수 감독대행을 마음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선수들도 프로이고 어렸을 때부터 수많은 지도자들을 경험하게 된다. 프로 선수들은 '짝퉁' 감독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만약에 이만수 감독대행을 선수들이 신뢰하지 않았다면 한국시리즈는커녕 일찌감치 4강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외국인 선수 중 한 명은 포스트시즌이 시작됐지만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아 엔트리에도 들지 못했고, 에이스 김광현은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었다. 믿었던 원투펀치 없이 포스트시즌을 시작해야 했다.
그러나 살아나는 SK 팀워크의 본색은 준플레이오프 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준플레이오프 1차전을 KIA 타이거즈에게 내줬지만 3연승을 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다음엔 한국최고의 타자 이대호와 롯데자이언츠가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들도 SK를 막을 수는 없었다.
예상밖에 선전에 많은 이들이 서서히 그의 편이 되기 시작했다. 격려차 인천 문학구장을 방문한 최태원 SK 회장은 "이만수 감독대행을 고향으로 보내주자"며 그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그가 진정한 프로였기에 가능한 결과들이었다.
이만수 감독대행을 메이저리그 불팬 코치로 선임했던 재리 매뉴얼 전 화이트 삭스와 뉴욕 메츠 감독은 그의 힘든 소식을 전해 듣고 이런 말을 했다.
“이만수의 야구를 믿고 열심히 하면 꼭 성공할 것 이라고 믿는다.”
공식 구단 발표가 나기 전까지는 그에게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그는 최선을 다했기에 어떤 결과가 그를 기다리고 있어도 분명히 떳떳하게 받아 드릴 수 있을 것이다.
한국시리즈가 종료된 후 몇 시간 안되 미국에서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토니 라루사 감독이 은퇴를 발표했다는 소식이었다. 33시즌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감독생활을 했던 명장이 그의 생애 3번째 우승을 한 후 멋있게 은퇴를 택한 것이다.
라루사 감독은 자기가 구단과 사인했던 계약내용에 끝까지 충실했다. 왜냐? 그는 프로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계약이란 구단과 하는 것이 아니다. 밑에서 피땀 흘리는 선수들과 또 그를 응원하는 팬들과 약속일 수도 있다.
이만수 감독대행이 정식으로 감독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설사 정식 감독이 되더라도 토니 라루사처럼 33년 동안 감독을 할 수 있을지는 더더욱 모르겠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2011 포스트시즌 동안 그는 진정한 프로였다.
대니얼 김 (OSEN 객원 칼럼니스트) 전 뉴욕 메츠 직원 / 신시네티 REDS 스카우팅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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