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류중일 감독은 올 시즌 중 가끔 이런 말을 하고는 했습니다.
"시즌 전 대단한 꿈을 꿨다. 그래서 우승 할거란 확신이 든다. 그런데 그 꿈이 뭔지는 말 할수 없다. 부정타지 않겠나. 우승하는 날 말씀 드리겠다".
그리고 10월 31일, 류 감독이 이끄는 삼성은 잠실구장에서 SK를 1-0으로 꺾으며 한국시리즈 전적 4승1패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초보 감독이 일궈낸 값진 성과였는데요.

경기가 끝나고, 삼성 선수단의 시상식까지 모두 끝난 뒤 상기된 표정의 류 감독과 한국시리즈 MVP 오승환, 5차전 데일리 MVP 강봉규가 공식 인터뷰실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감격의 우승 소감, 시즌 복기 등 질문이 오간 뒤 역시나 류 감독이 줄곧 이야기했던 '꿈'에 대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1년 동안 뜸을 들인 이야기이기 때문일까요, 류 감독은 멋쩍게 웃으며 쉽게 입을 열지 못했는데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올해 1월 괌 전지훈련 때 삼성 라이온즈 김인 사장이 방문을 했다고 합니다. 휴식 일에 류 감독은 김인 사장, 송삼봉 단장, 장태수 수석코치와 골프를 쳤다고 하는데요. 여기서 류 감독은 길조인 '상 무지개'를 봤다고 강조했습니다.
상 무지개.. 상 무지개? 현장의 취재진은 류 감독이 무슨 말을 하는 지 바로 알아듣지 못했는데요.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류 감독은 답답한 듯 양 손으로 무지개 모양을 만들며 "아 거 상 무지개 있잖요 상 몰라요 상?"이라고 말했는데요.
그제서야 이해를 한 취재진의 웃음 소리에 인터뷰실이 훈훈해 졌는데요. 대구 토박이 답게 류 감독은 쌍시옷 발음에 취약했습니다. 취재진의 웃음 소리에 류 감독은 계속 '쌍 무지개'를 제대로 발음하고자 노력했지만 '상, 상, 상'하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에 발맞춰 웃음 소리는 점점 커졌죠.
민망한 듯 얼굴이 붉어진 류 감독 역시 웃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이번엔 '쌍' 발음에 특별히 유의하며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류 감독은 "골프를 함께 치다가 쌍무지개를 봤는데 너무나 선명하더라. 그걸 처음 발견한 게 김인 사장이다. 그래서 함께 그걸 보면서 올 해는 좋은 일만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더라. 입이 간지러워서 힘들었지만 한국시리즈 우승하고 말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오늘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며 흐뭇해 했습니다.
마음 속 깊이 간직했던 비밀을 이제야 말한 류 감독의 얼굴은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습니다. 목표했던 바를 완벽하게 이루고 난 뒤라 그런지 더욱 밝아 보였는데요. 이제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해 출전하는 아시아시리즈까지 제패해 1월에 본 쌍무지개가 2개의 우승을 뜻하는 것이었다는 걸 보여줬으면 합니다.
/신천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