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은 왜 '이만수 야구'를 기대하나?
OSEN 박광민 기자
발행 2011.11.02 08: 52

거센 풍파를 이겨낸 '헐크' 이만수(53) 감독이 SK 와이번스 4대 사령탑 자리에 앉았다. 이만수 감독은 1일 오후 SK 구단과 3년간 계약금 2억5000만 원, 연봉 2억5000만 원 등 총액 10억 원에 정식 감독 계약을 맺었다.
이 대행은 계약 후 OSEN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재미있는 야구를 하고 싶다. 그리고 팬들에게 감동을 주는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면서 "SK는 드라마 같은 감동이 있는 팀이라는 색깔을 입히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무엇보다 이만수 감독의 힘찬 다짐 만큼이나 SK 팬들, 더불어 한국야구 팬들은 그에게 이유를 알 수 없는 설렘과 기대를 갖게 됐다. 무엇 때문일까.

▲누구보다 힘든 감독대행 시간을 거친 '헐크'
무엇보다 이만수 감독은 김성근 전 SK 감독의 짙고도 넓은 그림자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 지난 8월 18일 갑작스럽게 경질된 김성근 감독을 대신해 팀을 맡은 이만수 감독. 감독이라는 환상과 꿈을 갖고 있던 그에게 8월 18일은 자신의 인생가운데 가장 가슴 아픈 날이 됐다.
경기장을 찾은 일부 SK팬들은 경기 내내 이만수 감독을 조롱하는 말을 내뱉었고, 경기 중간중간 오물을 던졌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그라운드로 난입해 폭동과도 같은 현장을 목격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인터넷에는 본인을 포함한 가족을 비난하는 글들로 도배가 되면서 자신의 아침이 아닌 가족의 상처가 되어버렸다.
"누구에게 나의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다. 답답하다"고 말하던 이만수 감독은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뎠다. "그냥 이대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까지도 몇 번이나 했다"고 말한 그는 일단 연패에 빠지며 4위 자리마저 위태롭던 팀부터 추스르기 위해서 지난 8월 31일 LG전 패배 후 선수단 전체 미팅을 가졌다. 그리고 다음날인 9월 1일 문학에서 열린 LG전에서 9회말 극적인 동점을 만든 뒤 연장 11회 끝에 연패를 탈출했다. 당시 SK는 5위 LG에 2경기차로 추격을 허용한 상태였다.
이만수 감독은 승리를 거뒀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와 SK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이날도 SK 홈구장인 문학구장은 썰렁했다. 경기장을 가득 채웠던 SK팬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200여명의 팬들만 1루측 응원 단상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있었다. 응원도 없었다. 그냥 야구만 봤다. 경기 방해를 제지하려는 검은 정장 차림의 경호원들이 계속해서 눈에 들어왔다. 이만수 감독은 이렇게 큰 변화 없이 정규시즌을 3위로 마쳤다.
▲'위기' PS을 '기회'로 만든 이만수
이만수 감독은 KIA와 준PO에서 만났다. 감독 경험이 불과 한달 조금 넘은 그에게 포스트시즌은 큰 벽처럼 소곤거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만약 준PO에서 팀이 탈락한다면 감독 승격을 바라기 쉽지 않았다. 그에게 찾아온 위기였다. 그 역시 모든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애써 말을 아끼고 조심하면서도 항상 당당했다. 말 속에 진실함과 믿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이만수 감독은 KIA를 물리치고 PO에 진출한 뒤 롯데 마저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프로야구 30년사 중에서 감독대행이 팀을 한국시리즈까지 이끈 것은 역대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포스트시즌 동안 조금씩 자신의 색깔을 드러냈다. 선수단을 하나로 만들어내는 능력과 포스트시즌 내내 보여줬던 적절한 투수 교체 타이밍은 그의 능력이라고 인정해줘야 한다. 감독 취임 후 자신의 입으로 밝힌 것처럼 '재미, 감동, 드라마에 요소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만수 감독은 포스트시즌 내내 경기 전 선수들을 만나면 일일이 먼저 인사를 하고, 사소한 질문이라도 물으며 선수들에게 다가갔다. 물론 이만수 감독의 스타일을 알지 못한 선수들은 초반에 어떻게 할 지 모르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이만수 감독이 준플레이오프부터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까지 일관된 모습으로 다가가자 선수들은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포수 정상호가 아파 방에서 물리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당장 다음날 뛸 포수가 없자 그는 정상호 방을 찾아가 뛰어줄 수 있냐고 정중히 부탁했다. 정상호는 포스트시즌 14경기 모두를 소화했다. 그가 퇴장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재빨리 뛰어나가 주심을 막고 자신이 대신 퇴장을 당하겠다는 모습까지도 보였다.
▲기존 감독과 달리 신선한 이만수
이만수 감독에 대한 기대감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은 기존과 다른 모습이 가져다 준 신선함이다. 그는 포스트시즌 내내 경기 중 그라운드로 질주했다. 경기 중간중간 심판 판정에 불만이 있으면 거침없이 뛰어나가 심판들과 대화를 나눴다. 강한 어필이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해서 충분히 듣고 서로 의견을 주고 받았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미국프로야구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불펜 포수로 지내는 동안 메이저리그 명장으로 불리는 제리 매뉴얼, 그리고 아지 기옌 감독과 함께했다. 특히 기옌 감독과는 월드시리즈 우승의 기쁨까지도 함께 나눴다. 이 두 명장의 최대 강점은 이만수 감독에게서 보여지듯이 권위가 아닌 대화와 토론, 그리고 친근함이었다.
그 뿐이 아니다. 에이스 김광현이 5이닝을 한번도 채우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갈 순간마다 김광현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행여나 김광현이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했다. 경기 후 이만수 감독은 "여전히 우리 팀의 에이스는 김광현이다. 김광현은 한국 최고의 투수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외국인투수 브라이언 고든을 마운드에서 내릴 때는 포옹까지도 했다.
불과 한달 전까지만 해도 SK를 외면하던 팬들은 준PO, PO, 그리고 KS가 되자 하나 둘씩 경기장으로 몰려들어 KS 3,4차전 때에는 과거 SK 팬들로 꽉 찬 문학구장을 만들었다. 팬들은 순수한 그의 모습에 마음이 흔들렸다. 이전까지 권위를 앞세운 기존의 감독들과는 다른 모습들이 팬들에게는 새로운 볼거리였다.
이만수 감독도 "우선 재미있는 야구를 하고 싶다. 그리고 팬들에게 감동을 주는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SK는 감동이 있는 팀이라는 색깔을 입히고 싶다.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허슬 플레이도 많이 해야 할 것이다. 또 최선을 다해 뛰어야 한다.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팬들에게 드라마 같은 감동을 주는 팀 SK가 나의 작은 소망이다"라는 뜻을 나타냈다.
이만수 감독은 감독대행으로 75일을 보낸 뒤 76일째 되는 날에 정식 감독이 됐다. 과연 그가 재미, 감동, 그리고 드라마 야구를 팬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그가 지난 75일동안 보여줬던 모습과 마음만 변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여진다.
agass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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