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산업의 적극적인 지원 확대해야
[데일리카/OSEN] 10·26 서울시장 선거 이후 한-미 FTA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한-미 FTA를 둘러싼 핵심 논쟁 중 하나는 최초 한-미 FTA 타결안은 자동차 산업에서 확실한 이익을 볼 수 있어 다른 불리한 조항을 감수하더라도 전체적인 균형이 맞았는데, 재협상을 통해 미국에 자동차 분야를 대폭 양보했기 때문에 ISD(투자자 국가 소송제도) 같은 불리한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동차 산업은 완성차, 부품 할 것 없이 FTA의 최대 수혜주로 꼽히고 있다. FTA의 가장 큰 혜택은 관세 철폐이다. 즉시든 단계적이든, 전부든 부분적이든 관세 철폐는 FTA의 핵심 내용이다. 자동차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한국차의 위상과 국내 수입차 시장이 성장하긴 했지만 여전히 국내 시장의 10%도 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관세 철폐는 우리에게 확실한 득이다. 우리 수출 물량이 수입 물량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가능한 계산이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미국과 유럽 현지에서 생산하고 판매한다 하더라도, 현지 생산에 필요한 각종 부품 중 한국에서 조달하는 부품은 관세가 없어지기 때문에 그만큼 가격 인하 여력이 생기고 가격 인하는 그대로 경쟁력 증대로 이어져 판매량을 늘릴 것이다. 완성차 업체는 한국에서 생산하여 수출하는 물량은 그 자체로 관세 철폐 혜택을 받고, 미국과 유럽 현지 생산 물량은 한국에서 조달하는 부품의 관세만큼 혜택을 받아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한층 증대될 것이다. 이 경우 부품업체도 물량 증대로 인한 혜택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부품업체는? 부품업체 역시 관세 철폐 혜택을 받게 된다. 그러나 관세 철폐분은 부품업체가 아닌 시장 또는 완성차 업체에 귀속될 것이다. 관세 3원을 포함한 100원짜리 부품을 FTA로 관세가 없어진 후에도 여전히 100원을 주고 살 업체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완성차 업체는 97원에 부품을 사고, 그에 상응하는 만큼 시장에서 가격을 내려 판매량을 늘리든지, 시장 판매가격은 종전과 그대로 유지하고 관세 3원을 자신들의 이익으로 환수할 것이다. 따라서 관세 철폐로 부품업체에게 직접적으로 발생하는 이득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만, 관세 철폐로 유럽과 미국에서 자동차 가격이 내려가 자동차의 판매량이 늘어난다면, 부품 공급량도 같이 늘어나 매출 증대 효과는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현대차와 기아차처럼 국내 완성차 업체의 미국과 유럽 현지 공장에 납품하는 업체들은 물량 증대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의 현지 완성차 업체에 개별 부품을 납품하는 한국 부품업체들은 물량 증대를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과 유럽 현지 완성차 업체에 적용된 대부분의 부품은 그쪽 현지 업체들이 공급한 것이고, 한국 업체가 공급한 것은 소량에 불과해 완성차 업체들이 관세 3원을 자신들의 이익으로 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관세철폐가 미국과 유럽 완성차 업체의 원가절감 수단이 되는 것이다. 다만, 한국의 부품업체들이 미국과 유럽에서 영업활동을 하면서 관세 철폐만큼 가격 경쟁력이 개선되는 분명한 이득은 있다.
반대로 미국과 유럽의 부품이 한국에 수입돼 들어오는 경우, 국내 부품업체는 확실한 손해를 보게 된다. 국내에 들어오는 수입 부품의 관세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수입 부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국산 부품보다 수입 부품의 사용이 늘어날 것이다. 또 수입 부품 가격이 인하되면, 국내 부품업체들은 수입 부품에 자리를 뺏기지 않기 위해 자발적으로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다. 수입 부품이 관세 3원을 빼고 97원인데, 한국 부품을 100원에 공급할 수 있을까?
문제는 더 있다. FTA가 유럽, 미국과만 체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아세안(동남아시아 국가 연합), 인도 등과도 FTA가 이미 발효돼 있다. 미국과 유럽의 글로벌 부품업체들은 아세안 등지에서 생산하여 국내로 부품을 들여와 관세 혜택을 보고 있다. 반면, 국내 부품업체는 중국이나 아세안 등지에서 생산한 부품을 미국이나 유럽으로 가져갈 경우 관세 혜택을 볼 수 없다. 이렇게 중국과 아세안 등지에서 생산돼 국내로 들어오는 부품은 벌써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첨단 신기술로 갈수록 외국산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부품업체의 해외시장 개척은 이제 걸음마를 떼고 달리기를 시작한 수준에 불과하다. 또한 글로벌 업체는 규모의 경제를 등에 업은 막강한 buying power와 중국 및 아세안 등지의 현지 생산을 통해 가격 경쟁력에서도 국내 업체들을 압도하는 경우가 많다. 수입 부품을 쓰는 이유는 국내 업체가 기술과 품질 등에서 외국 업체와 동등한 수준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정말 부지런히 선진 부품업체를 따라 갔고 예전보다 그 격차를 많이 줄였지만, 여전히 벽은 높다. 오토모티브 뉴스가 발표한 100대 부품업체에 우리나라는 LG화학,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만도의 4개사만 있을 뿐이다. 더구나 LG화학은 친환경차의 배터리 때문에 작년부터 자동차 부품업체로 분류됐을 뿐 실질적으로는 자동차 부품업체라 할 수 없고, 국내 최대 업체인 현대모비스와 현대위아는 매출 비중이 큰 모듈 덕분에 순위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사다리 걷어차기’,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등의 저자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는 수준이 비슷한 국가끼리의 자유무역은 서로 득이 될 수 있지만, 수준이 다른 국가와 자유무역은 수준이 높은 국가에게 일방적 이익이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장 교수는 현재의 선진국들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기 전까지 보호 무역주의를 철저하게 고수했음을 지적했다.
이미 유럽과 FTA는 발효가 됐고, 미국과 FTA 역시 정치권에서 많은 논란을 거듭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발효될 것이다. 좋든 싫든, FTA 시대에 살아야 하는 것이다. FTA를 통해 자동차 부품 산업이 손해를 보지 않고 이득을 보려면, 부품업체 스스로의 노력은 물론 완성차 업체와 정부의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개발 지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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