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는 어떤 어려움이 와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큰 시련을 겪은 '추추트레인' 추신수(29,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일년 사이였지만 많이 성숙해진 듯 했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처럼 내년 시즌 부활을 다짐하며 인디언 추장다운 강인한 마음 가짐을 보였다.
추신수는 3일 오후 아시아나항공을 타고 인천공항을 통해 1년여 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부인과 아이들 대신 장모와 함께 입국한 추신수는 자신을 반기는 팬들과 동생인 영화배우 추민기 씨를 보며 웃었다. 그러고는 동생의 배를 주먹으로 가볍게 치며 형제애를 과시했다.

이날 추신수는 예년에 비해 많이 긴장한 얼굴로 입국장에 들어섰다. 이유가 있었다. 지난 2010년에는 2년 연속 타율 3할에 20-20 클럽이라는 빼어난 성적으로 데뷔 후 메이저리그 최고 활약을 펼쳤던 때와 달리 올해는 그의 입에서 "정말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많은 일들을 겪었다.
OSEN은 지난 2월 미국 애리조나주 스프링캠프 때 클리블랜드 훈련장인 굿이어 베이스볼파크에서 추신수의 훈련을 일주일 가량 지켜봤다.
그러나 훈련 첫날부터 문제가 생겼다. 왼 팔꿈치 윗 부분에서 가벼운 통증을 느낀 것이다. 지난 2007년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은 부위가 아닌 뼈 주변에서 통증을 느꼈다. 당시 추신수는 "공을 던질 때 매번 아픈 것이 아니라 한번씩 뼈가 부딪치는 느낌"이라며 "다른 때보다 조금 빨리 공을 던지다 보니까 통증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시범경기 개막전에서도 결장했다.
매우 가벼운 부상이었지만 시즌 중반 부상 악몽이 재연되면서 올 시즌 내내 그를 괴롭혔다. 지난 6월 26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원정 경기 4회 2번째 타석에서 상대 선발 조나단 산체스의 89마일(143km) 직구를 왼 엄지 손가락에 맞고 골절상을 당했다. 토마스 그라함 박사로부터 접합 수술을 받은 추신수는 6주 후 복귀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였다.
그러나 부상 악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딸이 태어난 지난 8월 24일 아침 아내 곁을 지켰던 그는 매니 액타 감독의 전화를 받고 경기장으로 달려와 생애 첫 끝내기 홈런을 치는 등 드라마같은 하루를 보냈다. 그렇지만 이날 더블 헤더 도중 왼 갈비뼈 근육통을 겪은 추신수는 끝내 근육 파열이라는 부상을 당하며 시즌을 접어야 했다.

다행히 부상은 잘 이겨냈다. 추신수는 3일 "엄지 손가락은 수술을 했기 때문에 100% 정상은 아니지만 운동을 하는데 문제가 없다. 옆구리도 처음에는 웃기도 힘들고 일상 생활도 힘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생활하는데 지장이 없다"면서 "지금까지 야구를 하면서 부상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적이 없었다. 작년에도 엄지 손가락이 부러졌지만 그렇다고 내 플레이에 무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손가락 수술을 했지만 몸쪽 공에 더 앞으로 다가섰다"고 말한 만큼 공에 대한 두려움은 깨끗이 떨쳐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마음이었다. 추신수는 지난 5월 음주 운전이 적발 되면서 곤욕을 치렀다. 법을 위반한 만큼 누가 뭐라고 해도 잘못한 일이었다. 추신수 역시 사고 직후 오클랜드 구장에서 만난 OSEN과 현지 인터뷰에서 "지난 2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홈경기에서 5-4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홈 13연승을 기록해 친한 팀 동료들과 어울렸다. 하지만 변명을 늘어 놓고 싶지 않다. 분명 잘못된 행동을 했다. 무엇보다 미안한 마음뿐이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바보같은 짓을 두 번 저지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순간의 판단 잘못으로 큰 파문을 일으켜 가족과 팀, 그리고 팬들에게 죄송하다"며 진심으로 사과했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마음 속에 큰 부담을 갖고 있었다. 추신수는 귀국 인터뷰에서도 "뭐,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 저런 일을 겪는데 올해가 그랬던 것 같다. 일단 많은 팬들과 국민들이 기대를 많이 하셨는데 시즌 초 불미스런 일이 있었다"며 음주 사고에 관련해서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분명 잘못한 일은 맞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 속 부담을 떨쳐낼 때가 됐다. 지난 1일 은퇴를 선언한 메이저리그 명장 토니 라루사 감독도 지난 2007년 3월 22일 미국 플로리다주 주피터시에서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 신호 대기 중 잠이 들어 체포된 적이 있다. 이 일로 인해 한바탕 곤욕을 치렀던 라루사 감독 역시 "나의 잘못에 모든 책임을 받아 들인다. 매우 귀중한 레슨을 배웠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정중히 사과한 뒤 감독직을 유지했다. 라루사 감독이 복귀 후 성공적인 시즌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팀 내 간판 선수인 알버트 푸홀스를 포함한 세인트루이스 팬들의 격려과 응원 덕분이었다.

추신수도 라루사 감독처럼 어두웠던 올 시즌 그림자는 훌훌 털고 내년 시즌에 화려한 모습으로 재기하면 된다. 이제는 메이저리그에서 유일한 코리안 빅리거인 만큼 가슴 속에 태극기를 달고 다시금 힘차게 뛰면 된다. 추신수 역시 "유일한 해외파로서 책임감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내가 하는 그대로 할 것"이란 뜻을 나타냈다.
다행히 추신수는 마음을 새롭게 하는데 좋은 기회가 생겼다. 이날 중순 육군 훈련소에 입소해 4주간 군사 훈련을 받게 된다. "한국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 하는데 특혜를 받아서 한달 동안 가는 것에 대해 부끄럽다. 가 있는 동안 열심히 해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겠다"고 말한 추신수. 새로운 경험을 통해 새로운 마음으로 힘찬 출발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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