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한신'이란 별명을 얻으며 롯데 자이언츠 팬들의 사랑과 신뢰를 한 몸에 받았던 손민한(36)이 결국 롯데 유니폼을 벗게 됐다.
롯데는 3일 손민한과 면담을 갖고 은퇴 후 해외 코치연수를 권유했으나 선수생활 연장을 강력하게 원하는 본인의 의사를 존중, 자유계약선수(FA) 공시 신청을 했다. 즉 손민한은 영입을 원하는 어떤 구단에도 갈 수 있는 몸이 된 것이다.
손민한은 방출이 결정된 후 OSEN과의 전화 통화에서 "선수로서 미련이 남았다"며 "내년에 대한 희망이 없었다면 이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나를 원하는 팀이 있으면 그 팀에서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선수생활 연장에 대한 뜨거운 각오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로써 2000년대 초 암흑기와 같았던 롯데 역사에 오롯이 마운드에서 버티며 에이스 역할을 해 온 손민한은 롯데에서 명예회복에 성공한 뒤 은퇴하는 데 실패했다. 2005년 정규시즌 MVP, 골든글러브에 빛나는 손민한의 통산 성적은 103승 72패 13세이브 평균자책점 3.46. 1997년 롯데 유니폼을 입은 뒤 오로지 롯데에서만 이룬 성적이다.
각자 이유와 모습은 다르지만 롯데 에이스는 고난의 길을 걷는 경우가 많았다. 故 최동원을 비롯, 염종석, 주형광, 故 박동희 등이 부상, 혹은 부진으로 인해 평탄하게 선수생활을 마감하지 못했다. 에이스 가운데는 윤학길이 그나마 선수생활 내내 큰 부상 없이 롯데 유니폼을 입은 채 은퇴했다.
지난 8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故 최동원은 롯데를 넘어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했던 불굴의 에이스였다. 1983년 롯데에 입단했던 최동원은 이듬해 롯데의 첫 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그는 선수노조 결성 문제로 구단과 마찰을 빚으며 결국 1989년 삼성으로 유니폼을 갈아입어야 했다. 최동원은 롯데에서 6시즌동안 96승 67패 평균자책점 2.27을 올렸지만 100승은 삼성으로 옮긴 뒤에야 달성할 수 있었다. 통산 성적은 103승 74패 평균자책점 2.46.
롯데의 1992년 두 번째 우승을 이끌었던 이는 故 박동희였다. 시속 155km의 강속구로 무장한 채 1990년 롯데 유니폼을 입은 박동희는 첫 해 10승, 이듬해 14승 등을 올리며 에이스로 떠올랐다. 그리고 1992년, 시즌 중에는 부진했지만 한국시리즈서 2승 1세이브를 올리며 시리즈 MVP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후 부상에 시달리며 결국 1997년 삼성으로 트레이드 됐고 쓸쓸히 유니폼을 벗었다. 그리고 2007년 3월, 개인 사업을 운영하다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통산 성적은 59승 50패 58세이브 평균자책점 3.67.

위의 두 에이스가 부침 끝에 트레이드로 롯데 유니폼을 벗었다면 염종석과 주형광은 지긋한 부상 악령으로 결국 다시 날아오르지 못한 채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다만 롯데 유니폼을 입고 은퇴한 것이 위안거리다.
염종석은 신인이었던 1992년, 17승 9패 평균자책점 2.33으로 혜성같이 등장해 한국 프로무대를 휩쓴다. 신인왕과 골든글러브는 염종석의 차지. 하지만 빛난 시기가 너무 짧았다. 1993년 10승을 거둔 염종석은 이후 롯데에서 뛴 14년간 단 한 차례도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지 못한다. 이유는 고질적인 어깨와 팔꿈치 부상. 수차례의 수술에도 염종석은 구위를 되찾지 못했고 결국 2008년 시즌 후 은퇴했다. 통산 성적은 93승 133패 평균자책점 3.76.
주형광 역시 좌완 에이스로 군림했지만 팔꿈치 부상을 이겨내지 못했다. 1994년 데뷔 시즌에 11승을 거두고 이듬해 10승, 1996년 18승을 기록하는 등 롯데 마운드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2001년 팔꿈치 수술 뒤 구위는 급격히 떨어졌고, 2007년 은퇴까지 중간 계투로 뛰며 7년 간 10승을 올리는 데 그쳤다. 주형광의 나이가 손민한보다 한 살 어리기에 짧았던 전성기가 더욱 아쉽다. 통산 성적은 87승 82패 9세이브 22홀드 평균자책점 3.83이다.
어쩌면 부상은 에이스의 숙명일지 모른다. 뛰어난 신체조건을 타고나 많은 공을 던져도 부상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에이스는 책임감 속에 혼신의 투구를 펼치며 서서히 마모되어 갔다. 손민한 역시 암흑기 마운드를 지키다 결국 어깨에 탈이 나고 말았고, 이것이 발목을 잡았다. 이제 손민한은 일생에서 가장 어려웠을지 모를 선택을 했다. 그리고 선택의 대가는 본인의 몫이다. 손민한이 부활에 성공해 다시 '민한신'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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