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G로 승부하겠소?“ ... 오 마이 갓 세상아 제발 멈추어다오.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1.11.04 10: 13

 [김재동의 변죽딴죽]낯선 번호로 전화가 온다.
받아보니 상냥한 음성이 쏼라쏼라댄다.
요지는 내가 우수한 고객이라서 핸드폰을 공짜로 바꿔준단다.
“아직 쓸만해서 바꿀 생각 없습니다.” 하고 끊는다.
그런 전화가 자꾸 온다.
예의바른 것도 한두번. “이런 전화 많이 받았는데요. 생각없습니다.” 불퉁하게 끊는다.
공짜라고 우기지만 공짜가 아닌 정도는 알만큼 영악한 난데 자꾸 공짜라고 우긴다.
개뿔이다.
다같이 낼모레 50인 친구놈들이랑 만났다.
제각각 스마트폰을 꺼내든 지들끼리 하는 얘기 듣다보니 그제서야 얼추 이해가 간다.
광고에서 자꾸 떠드는 “와이파이 잘 떠요?”가 무슨 뜻인지. 와이브로가 무슨 말인지.
마냥 겉돌수만은 없어서 묻는다. “그게 다 뭐냐?”
바로 날아오는 대꾸 “니 핸드폰 2G냐? 3G냐?”
“모르겠는데!”
“영상통화가 되냐 안되냐?”
“안해봐서 모르겠는데”
“카메라 있냐 없냐?”
“이게 카메라지?”
“3G 네”
주머니속을 수만번 들락거려 액정이 엉망인 내 핸드폰이 3G인줄 그렇게 알았다.
고향 청주가는 길.
친구 상가를 가는 중에 사정상 못가는 친구놈들의 전화가 잇닿는다.
“야 부주 5만원만 해주라”
몇놈 거 대신 받다보니 은행 잔고가 걱정이다.
운없는 마지막 놈이 기세좋게 떠든다.
“내껀 10만원!”
“돈 없어. 너두 5만원만 해” 
“계좌 찍어. 바루 보낼게”
“야 내가 글자는 띄엄띄엄 쓰는데 숫자는 못 써. 동창회때 줘라.”
기필코 10만원 부조를 하고 싶었던 그 친구, 결국 내 재량으로 5만원만했다.
상주인 친구놈한테 놈의 마음만은 10만원이었단 사실을 전한 건 물론이다.
세상살기가 점점 따분해진다.
신문사 다니던 1989년였다.
선배가 기사 찍어오란다.
공장에 갔더니 런닝셔츠 차림에 망치와 핀셋을 든 아저씨들이 어슬렁댔다.
납활자시대였다.
거꾸로 된 활자들을 핀셋으로 뽑아 기사 한묶음을 실타래로 묶는 시절이다.
최종 오탈자는 그런 묶음을 가져다 젖은 종이를 얹어 로울러로 찍어낸 세칭 ‘게라’(영어 갤리(galley)의 일본식 표현. 교정지)라는 것에서 잡는다..
어쩌다 로울러를 세게 밟아 실타래가 풀려 납활자가 망가지면  망치 든 런닝셔츠들이 ‘우’하고 몰려든다. 그 위압감이라니...
불과 얼마 안됐다.
당시에 신들린 손놀림으로 달인수준의 핀셋질을 자랑하며 활자를 뽑아내던 아저씨들이 아들뻘 새파란 강사앞에서 양순히 교육받는 모습을 본건. 
세칭 ‘대지바리’(대지작업의 일본식표현)라 부르던 시대다.
이 시대의 관건은 핀셋질이 아니라 칼질이다.
컴퓨터가 한몫에 프린트해낸 기사들을 편집자의 구도에 맞춰 대지판에 잘라 붙이는 시대다.
그 기세등등했던 핀셋질의 제왕들은 사그러들고 바야흐로 눈밝고 손안떠는 언니들의 전성시대가 왔던 것이다.. 
그도 잠시, 화상편집시대가 도래했다.
런닝차림으로 핀셋하나면 편집부장조차 비위를 맞춰야했던 아저씨들은 더더욱 주눅든채 매킨토시라는 이름의 괴물앞에서 재교육을 받아야했다.
그렇게 불과 5년남짓만에 편집공정의 3개 세대를 목도하고 말았다.
회사가 삐삐를 나눠줬다.
삐삐를 받으면 빼도박도 못하고 답신전화를 해야해서 개목걸이라 불렀다.
좀 지나 사은품이라며 시티폰이란걸 나눠줬다.
공중전화를 기점으로 일정거리 이내에서 전화를 걸 수 있는 기기인데 삐삐를 받고도 “공중전화에 줄이 길어서...”란 핑계를 댈 수 없게 만드는 안전장치였다.
쫄다구인 죄로 늦게받은 시티폰.
그 감격에 사무칠때 누군가가 핸드폰을 들고 나타났다.
헉! 걸어다니면서도 통화가 가능한 괴물이었다.
지금도 궁금하다. 당시 그 시티폰개발회사는 어찌됐는지...
죽은 스티브 잡스가 영웅일 수 있다.
제 2의 스티브 잡스도 영웅일 것이다.
그럼에도 개인적인 바람은 세상이 이쯤에서 한번쯤 멈춰 서 한숨 골랐으면 싶다..
1G! 2G! 3G! 4G! 가 1~2초 상간에 쾅쾅쾅 도장찍고 마침내 “4G로 승부하겠소!” 하지말고
제너레이션. 25년 알차게 채우면서, 쓸데없이 재화 낭비말고 충분히 익숙해진 채로 그렇게 한템포 죽여가며 살아가도 좋지않겠는가 싶다.
지하철 풍경이 변했다.
눈감고 졸거나, 맞은편 사람을 바라보며 궁금해하거나, 신문을 보거나, 그걸 곁눈질하거나 하는 풍경은 더 이상 없다.
모두들 스마트폰을, 아이패드를 뒤적이며 트위터를 하고 인터넷을 검색하며 남과, 세상과 소통하려 애쓴다.
옆사람과 우연히 시선 마주쳐 어색하게 웃는 경우도 없고 앞자리서 조는 아낙네의 사연따위 궁금할 것도 없이 그저 그렇게 소통을 갈구한다. 임산부나 노약자가 앞에 서있어도 자리양보같이 사소한 이유로 소통을 멈출순 없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하향평준화의 시대를 살고있다.(전적으로 내 생각이다.)
우리는 신제품들을 소지하고 유지하기 위해 물질적으로 가난해졌고 그걸 배우고 그걸 사용하느라 정신적으로 피폐해졌고 한 사안의 무수한 동조자들과 소통하느라 전인적으로 나를 오롯이 이해하는 한사람의 친구를 잃고있는게 아닌가 싶다,
  
무슨 광고엔가 “우리는 여전히 책을 읽고 뭘 하고 뭘하지만 단지 방식이 달라졌을 뿐입니다”는 요지의 문구를 본듯하다.
그 방식이 예전같지 않다는 사실이 왜? ‘단지’라는 사소하고 하잘 것 없다는 뉘앙스를 띈 부사의 수식을 받아 마땅한지는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기필코 삶의 질을 높이고야 말겠다는 신기술개발자들의 복받치는 의욕이 우릴 이 지경으로 못살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인제 겨우 문자배워 놨더니만... 또 뭘....
[극작가, 칼럼니스트]osenstar@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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