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6일 서울시장 보궐 선거가 열렸습니다. 여당인 한나라당에서는 일찌감치 나경원 의원이 결정됐으나 야당에서는 여럿이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참여했죠. 민주당을 비롯해 무소속 후보들까지 있었지요. 야권은 후보 단일화를 통해 한나라당에 맞서겠다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이들 가운데서도 단연 눈길을 모았던 인물은 서울 시장으로 당선된 박원순 시장과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안철수 교수였습니다. 경선이 열리기 전 여론 조사에서는 안철수 교수가 박원순 시장을 압도했습니다. 그러나 안 교수는 박원순 시장에게 후보 경선 자리를 양보하며 힘을 실어 줬습니다.
선거막판 박원순 시장이 고전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자 안철수 교수는 선거 이틀을 남겨 놓고 또 다시 공개 지지를 선언했습니다. 덕분에 박원순 시장은 총 투표율 48.6% 가운데 53.4%(2,158,476표)를 획득하며 46.2%(1,867,880표)에 그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29만 596표 차로 따돌리고 시장에 당선됐습니다. 자진 사퇴한 안철수 교수는 박원순 시장이 당선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정치권에 분 후보 단일화 바람이 나비효과로 한국프로야구에까지 이어진 것 같습니다. '돌직구' 오승환이 한국프로야구 30년사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윤석민(25, KIA), 이대호(29, 롯데), 최형우(28, 삼성)와 함께 올 시즌 정규리그 MVP 후보 4인에 이름을 올린 오승환은 3일 오후 구단 홍보팀을 통해 "선발 투수 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어서 최우수선수상(MVP) 도전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며 "하지만 한국시리즈가 끝난 뒤 고민 끝에 MVP 후보 경쟁에서 물러나기로 결심했다" 자진 사퇴를 선언했습니다.
프로야구사에 처음 있는 일에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대략 난감해했습니다. 정금조 KBO 운영팀장은 "이런 일이 없어서 당황스럽다"고 말하면서도 "불가능하다. MVP 후보는 선거처럼 입후보 하는 게 아니라 시즌 성적을 참고로 후보자 선정위원회가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후보를 사퇴하거나 그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오승환의 후보 사퇴는 불가능해졌습니다. 후보 단일화도 물 건너갔죠. 그러나 사퇴 여부를 떠나서 이번 일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사실 삼성 내에서 최형우와 오승환의 단일화 이야기는 시즌 말미에 계속해서 나왔습니다. 삼성은 지난 9월 28일 정규리그 1위를 확정했습니다. 시즌 종료 1주일 정도 앞서 우승을 확정 지으며 하루 하루가 축제였죠.
삼성이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4번타자 최형우와 마무리 투수 오승환의 공이 가장 컸습니다. 이 때문에 기자들도 류중일 감독을 볼 때마다 "둘 중에서 누가 MVP를 받으면 좋겠냐"는 말을 자주 물었습니다.그럴 때마다 류 감독은 "이건 정말 꼬마 아이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묻는 거나 비슷한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라며 "그래서 얼마 전에 (최)형우를 불러 '네가 양보 해라'는 말까지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사실상 그때까지만 해도 최형우가 아닌 오승환이 단일화 후보로 압축된 것이나 다름 없었네요. 지금 와서 다시 돌이켜 보니 단일화 후보가 바뀐 거고요.
이유가 있었습니다. 삼성은 10월 31일에 끝난 한국시리즈에서 SK 와이번스를 4승1패로 물리치고 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삼성이 4승을 거두는 동안 3세이브를 거둔 마무리 오승환은 기자단 투표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최우수상(MVP)을 수상하게 됩니다. 오승환은 5차전을 마친 후 기자회견에서 "정규시즌 MVP도 받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내심 2관왕에 대한 욕심을 낸 것이죠.
그러나 한국시리즈 이후 선거 판세가 급변했습니다. 오승환이 한국시리즈 MVP 수상 후 심리적인 변화가 생긴 것이죠. 오승환은 "같은 팀 후배인 최형우와 MVP 경쟁을 하는 것에 부담감을 느꼈다. 또한 최형우가 방출 선수 출신으로 피나는 노력으로 역경을 딛고 팀의 중심타자로 발돋움해 홈런, 타점, 장타율 등 타격 3관왕을 수상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한 공이 큰 선수로서 MVP 후보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해 후보 경쟁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자신은 한 차례 큰 상을 받은 만큼 2관왕 보다 함께 수고한 최형우와 기쁨을 나누고 싶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사실 오승환의 결정을 놓고 기자들과 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동료를 위해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후보 선정 자체를 모독하는 기만행위라는 말도 나옵니다.
저 역시도 무엇이 옳은 결정이고, 무엇이 그른 결정인지 사실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투표와 시상식은 7일 오후 2시에 열립니다.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기에 그 결과가 기대됩니다.
agass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