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32, 전북)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그리고 슬펐다. 얼굴에는 그늘이 가득했다.
전북 현대는 지난 5일 전주 월드컵경기장서 열린 알 사드(카타르)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2011' 결승전에서 이승현의 극적 동점골로 후반 종료 직전 2-2를 만들었지만, 승부차기 끝에 2-4로 패배했다. 5년 만에 아시아 정상 탈환에 나섰던 전북으로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경기였다.
전북 선수들 모두 아쉬움이 컸지만 한 선수의 아쉬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사자왕'이라 불리는 이동국은 프로로서 보내온 14년 중 가장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동국은 이번 대회서 9골을 넣으며 득점왕을 차지했다. 이를 바탕으로 이동국은 전북이 준우승에 그쳤음에도 대회 MVP(최우수선수)가 될 수 있었다. 2관왕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가 부족했다. 바로 대회 우승컵. 이동국은 자신의 개인 타이틀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오직 전북의 우승만이 중요했던 것. 이동국은 "결승전까지 올라오며 좋은 경기를 했기 때문에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나 우승을 놓쳤기 때문에 실망을 했다"며 준우승의 안타까움을 표했다.
가장 큰 아쉬움은 '자신'에게 있었다. 팀의 준우승이 자신의 탓이라는 자책감 때문이었다. 이동국은 "내 자신에게 원망스럽다. 왜 중요할 때마다 정상적인 경기를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될까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책임이... 결과적으로 나 때문이다. 성원해주신 분, 우승을 바란 분, 모든 분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동국이 이런 말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동국은 이번 시즌 오직 전북의 K리그 우승과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만을 바라보고 달렸다. 기록도 출중했다. K리그에서는 16골을 몰아치며 득점 2위에 올랐고, 도움은 15개를 기록하며 K리그 한 시즌 최다 도움 기록(종전 14개)을 경신했다. 최고의 한 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달 19일 열린 알 이티하드(사우디아라비아)와 4강 1차전에서 왼쪽 종아리를 다친 것이 치명적이었다. 단순 통증에 불과하다던 부상은 2주가 넘게 지속됐다. 결국 이동국은 제 컨디션을 갖고 결승전에 임하지 못했다.
1-2로 뒤지던 후반 25분에야 투입된 이동국은 연장 전반 골 에어리어 정면에서 골키퍼와 맞서는 결정적인 찬스를 맞았다. 하지만 이동국의 슈팅은 골대를 외면했다. '제 컨디션이었다면...'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자신신도 생각지 못한 부상이었지만 이동국으로서는 '왜? 하필 지금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부상이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출정식을 겸한 평가전서 무릎 인대 파열로 하차한 데 이어 지난해 남아공 월드컵 때도 대회 직전 당한 부상으로 이동국은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런 상태서 우루과이와 16강전에서 투입됐고, 결국 단 한 차례의 슈팅을 시도한 채 팀의 패배를 지켜봐야 했다. 이날 경기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한마디로 '시집 가기 전날 등창 나는 격' 이었다.
이동국으로서는 당시 경기가 오버랩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왜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항상 다쳐서 제 컨디션을 보여주지 못할까'라는 의구심에 빠지게 됐다. 그러나 의구심을 빨리 버려야만 한다. 이동국에게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는 30일부터 열리는 K리그 챔피언결정전이 남았고, 다음 시즌 AFC 챔피언스리그도 남았다. 이동국은 베테랑답게 자신에 대한 신뢰를 갖고 알 사드전 패배를 빨리 잊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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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