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슬램'은 원래 카드놀이인 브리지게임에서 13장의 패를 모두 따는 압승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야구는 만루 홈런과 동의어로, 골프나 테니스 등에서는 한 선수가 4개 메이저대회를 모두 석권하는 것을 가리키는데요. 모두 숫자 '4'와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골프는 마스터즈·US 오픈·전영오픈·미국 PGA 선수권대회를 4대 메이저대회로 치고, 테니스의 경우엔 호주오픈·프량스오픈·윔블던·US 오픈이 같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대회들을 1년 동안에 모두 석권해야 진정한 그랜드슬램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은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한 번씩 우승을 차지하면 그랜드슬램으로 인정해 줍니다.
만약 한국 야구에서 개인 수상의 그랜드슬램을 정한다면 무엇이 기준이 될까요? 일단 신인왕, MVP, 한국시리즈 MVP는 이견의 여지가 없이 들어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제는 골든글러브와 올스타전 MVP인데요. 사실 골든글러브는 매년 10명씩 수상자가 나오니 희소성이 좀 떨어진다고 생각됩니다. 올스타전이 이벤트전 성격이 강하지만 그래도 1년에 단 한 명만 나오니 그랜드슬램에 포함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이 기준으로 따져봤을 때 한국 프로야구 30년 역사에서 아직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선수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역시 가장 어려운 것은 신인왕인데요. 일생에 단 한 번만 기회가 있기에 신인왕을 수상하지 못했던 선수는 자연스럽게 후보에서 제외됩니다. 다만 세 개의 상을 수상한 선수는 이제까지 단 두 명 있습니다.
90년대 후반부터 00년대 초 까지 잠실벌을 호령했던 '흑곰' 타이론 우즈(OB)는 세 개부문 상을 수상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우즈는 98년 MVP에 이어 01년 올스타전 MVP, 01년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했는데요. 외국인선수라 자연 신인왕 후보에서 배제된 것이 아쉽네요. 또 한명의 선수는 '종범신' 이종범(KIA)입니다. 이종범은 데뷔 해였던 94년 MVP, 97년 한국시리즈 MVP, 03년 올스타전 MVP를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신인왕은 '신바람 야구'를 이끌었던 유지현(LG)에게 돌아갔습니다.
두 부문의 상을 차지했던 선수는 모두 6명입니다. 김성한(해태), 박재홍(SK), 유지현 등은 모두 올스타전 MVP를 차지했던 이력이 있고 김성한은 MVP, 박재홍과 유지현은 신인왕을 수상했지만 이제는 이미 은퇴를 했거나 은퇴를 앞뒀기에 그랜드슬램 달성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또한 이대호(롯데)는 지난해 MVP를 차지했고 05년과 08년 올스타전 MVP를 거머쥐었지만 신인왕은 놓쳤네요.
사실상 달성 가능성이 있는 건 이제 두 명의 투수입니다. 바로 '괴물' 류현진(한화)과 '돌부처' 오승환(삼성)인데요. 두 선수 모두 신인왕을 차지, 가장 어려운 관문은 통과한 상태입니다. 류현진은 거기에 데뷔 시즌은 06년 MVP까지 동시에 석권한 첫 선수로 이름을 남겼는데요. 앞으로 올스타전 MVP와 한국시리즈 MVP만 차지하면 됩니다. 또한 오승환은 데뷔 첫 해인 05년 신인왕을 석권한데 이어 그 해 한국시리즈 MVP까지 거머쥐었는데요. 그리고 올해 또 다시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했습니다. 올 시즌 47세이브로 최다 세이브 타이기록에 무패의 기록까지 남겨 내심 MVP도 노렸지만 윤석민에게 돌아갔습니다.
어쩌면 류현진과 오승환에게 가장 어려운 건 올스타전 MVP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화가 우승을 차지한다면 그 중심에는 에이스 류현진이 있을 가능성이 크고, 오승환이 본인의 기록이었던 47세이브를 경신한다면 언제든지 MVP를 노릴 만 합니다. 하지만 투수가 올스타전 MVP를 차지한 경우는 30년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단 두 차례만 있었는데요. 85년 김시진(삼성)과 94년 정명원(태평양)이 주인공입니다. 올스타전은 보통 결승타를 친 선수에게 MVP가 돌아가 투수에겐 불리합니다. 단순히 재미로 따져 본 야구의 '그랜드슬램' 이지만 앞으로 달성할 선수가 나올지 관심이 모아집니다.
/신천옹